요한계시록읽기

제16장 진노의 일곱 대접

작성자
변정미
작성일
2021-05-30 23:42
조회
690
계시록 16장은 앞 장에서 예고된 일곱 대접 재앙이 땅에 시행되는 것을 보여준다. 16장의 재앙은 애굽에 내린 재앙과 부분적으로 일치하고 있다(출7~10장). 이 장의 내용은 또한 계시록 8, 9장의 것(일곱 나팔 재앙)과 상당한 일치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다. 16장에서는 특히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하며, 진노가 더욱 맹렬해지며, 또한 진노를 당하는 범위에 제한이 없다.

먼저 요한은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는 것"을 들었다(1상). 이것은 이 음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임을 말해 준다. 그 음성의 내용은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것이다(1하). 따라서 일곱 대접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임을 알 수 있다.




1. 첫재 대접 재앙(2절)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고 한다(2절). 여기서 '악하고 독한 종기'는 독종, 곧 악한 피부병의 일종(출9:10, 11, 욥2:7)을 말한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첫째 짐승에게 속한 사람들, 곧 그에게 경배한 자들을 말한다(cf.계13:6). 따라서 이 구절은 황제 숭배에 동참한 자,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한다.



2. 둘째 대접 재앙(3절)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고 한다(3절). 이것은 바다에 대한 심판을 말한다(cf. 출7:17~21). 둘째 나팔 재앙(계8:8,9)에서는 바다 가운데 피조물의 '1/3'이 죽었으나, 여기서는 '모든 생물'이 죽었다. 이로써 심판이 격화되었으며, 이로써 이것이 마지막 심판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3. 셋재 대접 재앙(4~7절)

셋째 대접 재앙은 '강과 물 근원'에 대한 심판이다(4절). 그 때 물을 차지한 천사가 말하였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5절).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 번역에는 "전에도 계셨고"가 먼저 나오지만, 원문에는 "지금도 계시고"가 먼저 나온다(cf. 계1:4,8,11:17). 사람들은 무심코 과거부터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은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신다(cf. 요9:2~3, 빌3:13~14, 삼하12:22~23). 왜냐하면, 현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는 시간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응답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장차 오실 이'가 빠진 이유는 이미 오셨기 때문이다(cf. 계11:17). 따라서 이것은 마지막 종말 심판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구절의 말씀의 핵심은 이렇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이다(cf. 계15:3).

이어서 6절에서는 왜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운지에 대한 '이유'가 나온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기"때문이다. 순교자들의 피에 대해 하나님은 다 보시고 갚으신다(창4:10, 히12:24, 마23:35).

이에 대해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제단이 화답하였다.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7절).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으로 옳으며, 우리가 긍정해야만 한다(롬3:5~6). 만일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지 않다면, 공의가 무너지고 이 세상은 유지 될 수 없다. 불의가 판을 치고, 마귀가 경배를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심판은 필요하며,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으로 참되시며 의로우시다.



4. 넷재 대접 재앙(8~9절)

넷째 대접 재앙은 '해(태양)'에 쏟아졌다. 그래서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웠다(8절). 이것은 넓게는 자연계에 내려지는 재앙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였다."고 한다(9절). 회개치 않는 것이 재앙을 만난 사람들의 특징이다. 해마다 태풍이 불고, 수재가 나서 큰 피해를 보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회개하지 않는다. 수재민 돕기와 각종 모금 운동으로 떠들썩 하지만, 정작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말세로 갈수록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 될 것이다.



5. 다섯째 대접 재앙(10~11절)

다섯째 대접 재앙은 '짐승의 보좌'에 쏟아졌다(10절).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중심'에 심판이 내려진 것을 의미한다(Hendriksen). 그러자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고 한다(10하. 11절).

세상 나라는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고통당하게 되나, 회개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비방한다. 이처럼 말세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악해지며, 좀처럼 회개하지 않는다(계22:10~11, 단12:10)



6. 여섯째 대접 재앙(12~16절)

여섯째 대접 재앙은 '큰 강 유브라데'에 쏟아졌다(12절). '유브라데 강' 저편은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이 있던 곳이며,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악한 세상을 의미한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다."는 것은 동방 민족들 곧 곡과 마곡(계20:8, 겔38, 39장)이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오는 것을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들이 치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Greijdanus). 곧 세상 세력이 기독교를 공격하러 온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특별히 세상의 마지막 때에 반기독교 세력이 단결하여 일제히 교회를 공격할 것을 가리킨다.

이어서 요한은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13절)을 보았다고 한다. '개구리 같다'는 것은 혐오감이 드는, 불쾌한, 그리고 염증 나는 성격을 말한다(Hendriksen). '용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사탄의 직접적인 역사를 의미한다. '짐승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정치적인 역사를 의미한다. '짐승'은 '세상 권세가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 곧 적 그리스도와 그의 지배'(Greijdanus), 또는 '적그리스도적인 정권"(Hendriksen)을 가리킨다.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역사 곧 거짓 종교의 역사를 가리킨다(계13:11이하, 19:20, 20:10).

이들의 '귀신들의 영들'인데,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은다."(14절). 이것은 마귀의 지배를 받는 악령들이 세상 나라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교회, 곧 성도들을 공격할 것을 말한다. 그 미혹의 수단은 '이적들'이다.

그리고 나서 잠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언급한다.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개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5절).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였음과 또한 우리가 그 앞에 예비하고 깨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세상의 핍박이 심할수록 예수님의 재림도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고 한다(16절). '아마겟돈'은 원래 히브리어에서 온 것인데 정확하게 음역하면, '하르 마게돈'이다. '하르'는 히브리어로 산을 뜻하고, '마게돈'은 이스라엘의 '므깃도' 지역을 가리킨다. '므깃도'는 바락과 드보라가 가나안 왕 야빈을 무찌른 곳이며(삿5:19), 또한 이곳에서 요시야가 애굽 왕 바로느고에게 죽임을 당했다(왕하 23:29~30, 대하 35:22). 따라서 '아마겟돈'은 전쟁의 장소를 의미한다. 계시록에서 이것은 어떤 구체적인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서 교회와 세상 사이의 싸움,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가리킨다(계20:8~9).



7. 일곱째 대접 재앙(17~21절)

일곱째 대접 재앙은 마지막 재앙인데, '공기' 가운데 쏟아졌다. 그러자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되었다'고 말하였다(17절). 여기서 '되었다(geogonen)'는 말은 하나님의 세상 역사 운행이 끝났다는 의미이다. 이에 반해 요한복음 19:30의 '다 되었다(tetelestai)'는 것은 객관적인 구속 사역이 완성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성령을 통한 주관적인 적용은 아직 남아 있으며, 세상 역사는 계속된다.

그러나 계시록 16:17의 '되었다'는 것은 이제 세상 역사가 완전히 끝나고 종말이 왔다는 의미이다. 그 때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었다(18절). 이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하였음을 보준다. 이어서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고 한다(19~20절).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은 단지 로마 제국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요한계시록은 전세계의 전역사를 보여주며, 16장은 세상의 종말에 있을 심판을 보여준다(20절).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15절)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준다. 따라서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악한 세상을 가리킨다. 물론 요한 당시에는 로마 제국이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로마 제국 멸망을 포함아혀 무엇보다도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큰 성 바벨론'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계21:2, 10, 11:2, 22:19)에 대비되는 상징이다. 세상은 '크다'는 것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하다'는 것을 자랑한다. 세상의 죄에 물들지 아니하고 순결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것이 교회의 특징이며 본질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고 한다(21절). 한 달란트는 약 90파운드(45kg) 가량 되는 무게이다. 따라서 이런 무게가 나가는 우박은 실제 우박이 아니라, 상징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만큼 큰 우박이 내릴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만큼 크고 무섭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재앙을 당하여서도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비방한다. 이것이 사람들의 완악함인데 종말이 가까워올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