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읽기

제 13 장 두 짐승과 육백육십육

작성자
변정미
작성일
2021-05-06 13:08
조회
696
요한계시록 13장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1-10절)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11-18절)에 대해 말한다. 첫째 짐승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세상 나라 또는 그 포악한 제국을 나타낸다. 당시의 세상 나라는 로마 제국이었으며, 그 정점에 로마 황제가 있었다. 둘째 짐승은 이 세상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거짓과 이적으로 세상 사람들을 미혹하며 첫째 짐승 앞에 경배하도록 한다. 이 둘은 사탄의 중요한 두 하수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미혹하여 우상 숭배를 강요한다.


1.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1-4절)

요한은 '바다에서 한 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이 짐승은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었다. 그리고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었다(1절). 여기서 '바다'는 열국(列國), 곧 세계 각 나라들을 가리킨다(계17:15). '짐승'이 가지는 이미지는 포악하고 잔인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에 대응하는 상징으로서 '어린양'은 온순하고 선량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뿔'은 권세, 힘의 상징이며 파괴의 수단이다. 그래서 '뿔'은 '머리'와 마찬가지로 나라들을 가리킨다(cf. 계17:9-12). '열왕관'은 자기 스스로 취한 권세와 영광을 나타낸다.

"그 머리들에 참람된(신성모독하는) 이름들이 있었다."는 것은 세상 주관자들이 자기를 신(神)이나 신격(神格)으로 부르는 칭호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주(Kyrios)', 또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 높이 들린 자)'와 같은 칭호들이다.

요한이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2절). 이것은 구약 시대에 다니엘이 본 네 짐승(사자, 곰, 표범, 무섭고 놀라운 짐승)의 모습과 비슷한다(단7장). 표범, 곰, 사자는 힘세고 용맹하고 사나운 맹수들의 대표들이다(호13:7,8). 이들은 잔인하여 다른 동물을 찢는 성격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 나라의 권세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찢고 죽인다. 그런데 이들 권세의 배후에는 용(사탄)이 있어서 그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짐승에게 준다. 여기서 우리는 사탄과 세상 통치자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와 교제를 볼 수 있다(Greijdanus).

그런데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랐다."고 한다(3절). 이 구절은 이해하기가 어려우며 주석가들의 견해도 많이 나뉜다. 그 중에서 무난한 견해는 "역사상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전제적 국가 권력은 반복적으로 해를 입으나 그것은 놀랍게도 다시 회복된다."고 보는 것이다(Van de Kamp, Beale). 여기서 우리가 또 생각할 것은 요한계시록에 '짐승'은 '어린양'에 대비되는 상징으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어린양'은 "일찍 죽임 당한 것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계5:6). 그런데 그 '짐승'은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았다. 이것은 '짐승'이 '어린양'을 모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쨌든 온 땅이 이 '짐승'을 놀랍게 여겨서 따른다(3하).

4절에 보면,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였다."고 한다. 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는 자는 '용', 곧 사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사탄)에게 경배한다. 뿐만 아니라, 짐승에게도 경배한다. 이 짐승은 권세를 가진 '세계 제국'이면서, 또한 그 정점에 있는 '황제'이다. 따라서 이것은 당시의 '황제 숭배'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들이 이 짐승에게 경배할 때 이렇게 말한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4하). 이것은 세계 제국의 중심에 있는 통치자의 막강한 권세를 말한다. 감히 이 통치자와 더불어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모해 보인다. 사탄이 배후에서 권세를 주고 조종하고 있다.


2. 짐승의 훼방과 권세(5-8절)

그래서 이 짐승은 하나님을 훼방하고 성도들을 핍박한다(5절).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이 짐승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마흔두 달'은 3년 반과 같은 기간으로서 '핍박의 기간'을 나타낸다. '하나님을 훼방한다'는 것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짐승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하늘에 거하는 자들도 욕한다(6절). 이것은 세상 제국의 통치자들이 하나님과 하늘의 존재들을 우습게 여기고 교만하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cf. 단4:30).

뿐만 아니라, 이 짐승은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다."고 한다(7절). 이 짐승은 성도들과 영적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긴다'는 것은 일시적, 가견적 승리를 말한다. 세상 제국의 통치자들은 권세를 가지고 각 나라와 백성들을 다스리며, 또 성도들과 싸워서 이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한다(8절). 이것은 택함 받은 자들 외에는 다 우상 숭배에 동참할 것을 말한다.


3. 성령의 권고와 격려(9-10절)

이런 환난과 핍박의 상황을 당한 성도들을 향하여 성령께서 권고하시고 격려하신다. "사로잡실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10절). 이 구절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 사본상의 문제와 번역상의 문제가 있다. 개역 한글판에서처럼,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개역개정판에서처럼,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로 보는 것이 좀 더 나아 보인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 때,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만일 어느 누가 사로잡히기로 작정되어 있으면, 그는 사로잡힐 것이요"(Greijdanus, Beale, cf. 렘15:2).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豫定)을 말한다. "만일 어느 누가 황제 숭배를 거부한 죄로 잡혀 죽기로 작정되어 있다면, 아무리 피하고 도망쳐도 잡히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두려워 말고, 당당하게 임하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처럼 예정의 사실은 환난 당한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도 직역해 보면, "만일 어느 누가 칼로 죽임 당하기로 작정되어 있으면, 그는 칼로 죽임 당할 것이다."가 된다. 이 또한 예정의 사실을 말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작정을 벗어나서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공중의 참새 한 마리도 하늘의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10:29). 이것은 바로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을 요구하는 말씀이다(계14:12, 3:10). 어떤 환난과 핍박이 와도, 설령 죽음이 올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말라는 격려의 말씀이다(계2:10).


4. 땅에서 올라온 짐승(11-12절)

요한이 두 번째로 본 짐승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다(11절). 이 짐승은 거짓 선지자를 말한다(계16:13, 19:20, 20:10).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온 세상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 종교와 이방 종교 지도자들 전체를 지칭한다. 여기서 '땅'은 하늘과 대비되며(시115:16), 못한 것, 낮은 것(전5:1, 시103:11, 사55:9)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죄악된 것, 마귀적인 것을 상징한다(빌3:18-20, 약3:14, 15). 이 짐승은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었다."(11하). 이것은 거짓 선지자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을 의미한다(cf. 마7:15, 고후11:14). '용처럼 말했다'는 것은 이 짐승의 본질이 마귀적임을 말한다.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고 한다(12절). 거짓 선지자 곧 이방종교 지도자들은 첫째 짐승의 권세를 다 행하고, 또 사람들을 미혹하여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 이 첫째 짐승은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인데(cf. 3절), 구체적으로는 로마 황제를 가리킨다.


5. 큰 이적을 행함(13-15절)땅에서 올라온 이 짐승은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고 한다(13절). 당시의 이방종교 제사장들은 아무런 화인(印)이 없이도 불이 쏟아져 나오게 하고, 복화술(腹話術, ventriloquism)을 사용하여 황제의 동상이 정말로 말하는 것처럼 했다고 한다(W. M. Ramsay, Hendriksen). 또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고 한다(14절). 이처럼, 당시의 이방종교 지도자들을 용(마귀)에게서 받은 바 이적들을 첫째 짐승 앞에서 행함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였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첫째 짐승(황제)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말하였다.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한다(15절). 여기서 '그 짐승의 우상'은 황제의 동상을 말한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황제의 동상이 말하게 하는 이적(복화술)을 행하였다. 이런 이적을 통해 사람들이 그 우상 앞에 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

6. 육백육십육(16-18절)

이 둘째 짐승은 모든 자에게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였다(16절). 이 표는 그 표를 받은 사람이 (첫째) 짐승에게 속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였다."(17상). 이것은 황제 숭배에 참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업과 경제 활동에 막대한 지장과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한다(17하). 이 표는 곧 황에즤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적은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곧 그 표를 가진 자가 첫째 짐승(황제)에게 속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나서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18절). 여기서 짐승, 곧 첫째 짐승은 어떤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수를 '세어보라'는 것은 계산해 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cf. 눅14:28). 그 수는 '육백육십육'이라고 한다. 이 수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며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네로 황제를 가리킨다고 본다. '네로 카이사르(Nero Caesar)'를 히브리어로 변환해서 그 글자의 수 값을 합산하면 666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며, 수신자들도 헬라어를 사용했는데, 왜 히브리어로 바꾸어서 계산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바꾼 히브리어 철자도 정확하지 않다. 철자 하나(요드)가 빠져 있다. 더구나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 할 당시에 네로(54-68년 통치)는 벌써 죽고 없었다. 당시의 로마 황제는 도미티아누스였다.

그래서 개혁주의 주석가들은 이 '육백육십육'을 대개 상징적으로 이해한다. 즉 6은 7에 하나 모자라는 수이니 불완전함, 인간의 교만을 의미하고, 그것이 세 개 모인 것은 인간의 교만의 극에 달한 수로 보는 것이다(Greijdanus, Hendriksen, Hughes, Beale 등). 그래서 666은 세상의 지배자인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이 적 그리스도는 개인적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집합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도 약간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18절의 '세어 보라(psephisato)'는 것은 '상징적인 해석'을 하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숫자를 '계산해 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6'이 셋이라고 했지만, 원문에 의하면 아라비아 숫자로 '666'이 아니고, '헥사코시오이 헥세콘타 헥스(육백육십육)'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셀라어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이 '6'이 세 개라고 선뜻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짐승의 수'는 곧 '사람의 수'란 것도 어떤 구체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아가서 요한계시록 13장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첫째 짐승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세계 제국인데, 당시에는 로마 제국이었으며, 그 정점에 로마 황제가 있었다. 당시 성도들은 이 황제 숭배 때문에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런 결론은 당시에 로마 제국의 황제이었던 '도미티아누스(Domitianus)'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문맥상, 원어 주석상 가장 자연스런 결론이다. 그렇지만, 과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이름이 합이 666이 되는지가 의문이다. 여태까지 발견된 당시 동전들에 나타나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축약된 헬라어 칭호들(A.KAI. ∆OMET, ∑EB, ΓE)을 다 합치면 666이 된다고 한다(Beale). 그러나 이러한 칭호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동전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따라서 아직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다(Beale). 따라서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Mounce).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기까지는 위 개혁주의자들의 상징적인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