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사랑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물조차도 언젠가는 마를 날이 옵니다. 네? 물이 마른다고요? 네. 하나님께서 그 입김으로 불어버리면 물의 근원이 말라버립니다. 모든 세상을 심판하실 그 마지막 불의 심판에서 남겨질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불의 심판 바로 그때까지일지라도, 퍼내어도 퍼내어도 없어지지 않고 불에도 타지 않을 단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으로써 행한 모든 흔적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두말할 나위 없이 글과 말인 언어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가 말씀인 성경으로 주어졌고, 그 사랑이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으로 현현하셨고, 또 그 사랑이 오순절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갈라지는 불의 혀와 같은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 그 증거가 되지요. 성령의 불은 제자들에게 남겨져 있던 두려움을 태워버리고, 아름다움과 순결함과 거룩함의 사랑의 방언의 말씀을 잉태하였습니다. 갈릴리 시골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님의 충만히 임하심으로 배우지도 않았던 당시 약15개국 다른 언어들(other tongues)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른 언어인 방언은 영혼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용할 필요없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였습니다. 가장 좋은 성령의 은사 사랑의 언어로 온 세상에 순교의 피가 뿌려졌고 영혼들이 살아났으며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2. 말의 위력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율법의 올무와 죄의 사슬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를 해방시켰던 것은 바로 사랑에서 비롯된 성령의 충만한 능력, 첫 열매인 사랑의 열매인 말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어인 글과 말은 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 말과 글이 내포하고 있는 뉘앙스 즉 아주 미묘한 차이나 느낌에 따라서 사람의 기분이 좌우되기도 하여서 그 말이 듣는 이로 하여금 힘있게 일어설 수 있도록 도전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용기를 잃고 절망 가운데로 빠지게도 하는 것입니다. 화자의 판단과 근거가 논리적이며 이성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의 어법에는 희생과 용서의 예수그리스도의 언어가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예수님의 구속은 내게만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 마땅한 죄인들에게도 더욱 효험이 있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고린도교회에 서신을 보낸 바울 사도의 로마서에서의 고백은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죄성과, 육신으로는 이길 수 없는 죄의 법을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의 법으로 마음에 새겨 사랑의 복음의 순교자가 되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하지 아니하다.’
3. 성령의 사랑의 언어
`가족간의 대화는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성도간의 사랑도 언어에서 발전됩니다. 이웃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도 성령의 은사의 언어로 표현할 때 유익합니다. 사랑의 언어는 오래 참습니다. 온유합니다. 교만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무례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순간 북받치는 기분과 순간의 판단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겸손하고 예의바른 모습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합니다. 환한 얼굴로 온화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용기와 생명이 넘치는 축복의 언어를 씁니다. 그런 사랑의 언어가 하나님의 속성, 예수님의 사랑의 완성이며 성령님께서 주신 가장 큰 은사입니다. 사랑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사랑이 메마른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은사, 사랑의 언어의 은사를 아낌없이 사용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