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색깔 저 색깔, 이 모양 저 모양의 조각 유리로 장식되어진 교회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세상의 영욕에 물들어 지친 영혼들이 주님 앞에 나와 고요히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을 때 신비하고 경건한 느낌을 줍니다. 색색으로 비취는 태양은 마치 밀레의 만종에서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베어 나오는 듯 마음을 모아 주기도 하고, 어쩌면 고흐가 흩뿌려둔 물감처럼 묘한 신비감을 주기도 합니다. 아니 좀 더 신실한 묘사는 우리를 감싸주고 계신 성령님께서 비둘기처럼 임하시는 평온함일지 모릅니다.
발에 밟히거나 손에 찔리면 상처를 주게 되는 깨진 조각 유리들이 이렇게 고양된 아름다움을 만들어 주는 것은 왜일까요. 어찌됨인가요.
하나님을 반역한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은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집행되게 하였고 그 결과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나무의 과실이 있는 에덴동산은 차단되었습니다. 시기와 탐욕으로 말미암아 동생을 땅에 묻어버린 가인으로 땅은 황폐해졌으며 화염검으로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태고 이래로 우리 삶은 이렇게 부서져 버렸습니다.
흠 없는 다이아몬드로 결혼을 꿈꾸는 신부처럼, 해안에 별장을 짓기를 희망하는 건축가는 깨어진 것으로 조각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손에 들려진 것은 상처를 주는 깨어진 자재들 뿐입니다. 멋진 통유리, 두텁고 안전하게 만들어 들려진 ‘인생’이라는 그 색유리는 우리의 부주의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질서와 혼돈 가운데서도 이 아름다운 새소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저 푸른 하늘에 맑고 투명한 뭉게구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깨어지고 조각난 우리의 삶을 성전의 창문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실수와 죄를 숨기고자 깨어진 조각을 발로 밟고 고집스럽게 서 있지만 않는다면, 그 조각을 손에 쥐고 울며 애통해 하며 부끄러운 낯으로 주님을 간절히 바라만 본다면, 우리의 조각난 삶들도 아름답고 신비한 빛을 비추는 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거듭 날 것입니다. 늘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밤낮 주님의 집에 거하는 시인처럼(시84:10), 그렇게 주님의 식탁에서 먹고 마시고,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부활의 주께서 주신 새생명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변정미 목사
생트 샤펠(프랑스 왕실 예배당)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