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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남은혜교회</title>
		<link>https://xn--939ajxm7ebv6ap5qita.org</link>
		<description>예수님을 따라</description>
		
				<item>
			<title><![CDATA[2025년 6월 29일 기도문 (이재평집사님)]]></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44]]></link>
			<description><![CDATA[6월의 마지막 주일,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이 복된 주일에 우리를 교회로 불러 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한 주도 변함없는 은혜와 보호하심으로 저희의 삶을 지키고 인도해 주셨기에 오늘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다섯째 주일로 맞는 이 시간, 우리의 마음과 생각, 삶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며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입술로는 주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6월의 마지막 주를 보내며, 지나온 반년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때로는 기쁨과 감사, 때로는 어려움과 눈물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모든 순간에도 주님께서 우리 곁에 함께 하시며 위로와 소망을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지난 시간,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여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고, 믿음의 길을 온전히 걷지 못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나태함과 교만함을 회개하오니, 십자가의 은혜로 덮어주시고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 주셔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2025년 남은 시간에도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하옵서서.

오늘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께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시고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모든 성도들이 위로 받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Thu, 17 Jul 2025 13:52:1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7"><![CDATA[오늘의기도]]></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4.6.9. 기도 변정미 목사]]></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45]]></link>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weight:400;">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불러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도록 불러 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span>

<span style="font-weight:400;">지극하신 사랑으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저희를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시고</span><span style="font-weight:400;">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어 저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씻으시고 구속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영원히 죽지도 못할 곳 불타는 지옥의 형벌에서 건지신 것을 감사드립니다.</span>

<span style="font-weight:400;">잠시 잠간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고통도 말할 수 없건만, 영원한 형벌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span><span style="font-weight:400;">그럼에도 저희들을 영광으로 가득한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복락과 평안의 천국으로 인도하시니 감사드립니다.</span>

 

<span style="font-weight:400;">이렇게도 사랑하셔서 저희들을 택하여 주셨건만 여전히 연약한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span><span style="font-weight:400;">택함 받은 자로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도, 거룩한 나라로 영원을 잘 준비하게 하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사탄의 미혹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시고, 세속의 탐욕으로부터 건져주시옵소서. </span><span style="font-weight:400;">육신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말씀과 규례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우리의 심령에 빛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영으로 가득하여 늘 생명력이 흘러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죄의 열매가 가득한 어두운 세상에서 신음하고 갈 길을 잃은 영혼들이 우리 속에서 가득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생명의 빛을 받아 힘을 얻어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세계 방방곡곡에 임하고 있는 재앙과 질병의 두려움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span><span style="font-weight:400;">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보시는 아버지의 기이한 사랑을 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기까지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이방인의 뜻을 좇아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는 세상의 달콤한 유혹으로부터 지켜주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전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정결하고 흠이 없는 신령과 입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span><span style="font-weight:400;">근신하고 깨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강남은혜교회를 돌아보시옵소서. 성도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궁핍을 베푸시사, 부족한 것을 채우시고 강건하게 자라도록 인도 하옵시고 우리의 예배 장소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연약한 가운데서도 가련한 이웃을 돌보며 말씀을 전하며 함께 찬양드리며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게 하여 주옵시고, 택하신 영혼들이 살려주시옵소서. 작지만 이 착한 행실을 보는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우기에 무덥고 습한 우기를 잘 지내도록 안락한 쉼터를 주시고 먹고 씻고 잠을 자며 건강하고 건전한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저들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절망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들과 돕는 손길들의 모든 헌금을 살피시사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채우시고 자녀들의 장래가 복되게 인도하여주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나라와 민족을 안정되고 질서 있게 하여주옵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것이며 이 나라의 장래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일찍이 순교자의 피로 나라를 살리시고 이 토록 부강하도록 하셨사오니 주여 불쌍히 여기시고 살려주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 탐욕에 기울어져 사분오열되고 부정한 거짓들의 드러난 실체를 소멸시키시고 이 나라 지도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주의 뜻대로 회복 시켜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기둥들과 상식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두려운 진실 앞에 무릎 꿇는 백성을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기에 안전하고 거룩하게 버틸 나라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한국 교회와 우리의 자녀들을 또한 돌보아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백성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오늘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허락하시어 회개와 성찰로 변화된 새사람 되게 하여주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오늘 참석하지 못한 성도들도 일일이 찾아가시어 주님의 임재를 보여 주시옵소서.</span>

<span style="font-weight:400;">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span>]]></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Sun, 09 Jun 2024 06:21:3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7"><![CDATA[오늘의기도]]></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3.3.12."영적 장애물 정리"]]></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36]]></link>
			<description><![CDATA[가공할 악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 혼란한 세대를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 승리의 이름을 붙들고 살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 자유의 이름 가운데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거짓 영들의 숱한 유혹 가운데서도 진리의 복음이 외쳐지는 곳에 한쪽 발이라도 담그고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무슨 은혜인지 날마다 죄를 회개하라고 지적을 받고도 돌아서면 그만인, 극적인 변화와 신분 상승의 기회를 날마다 놓치고 있는 자들임에도 지난 한 주간 무슨 일을 하였든 어쨌든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희한한 일인 것 같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미련한 가운데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영혼이 마비되어 인생을 정복당한 채로 포로가 되어 끌려다니는 자들을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온갖 이단, 사이비들이 미친 듯이 굿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온갖 거짓과 음란함, 속여 빼앗고 분열시키며 폭력을 행사하는 악한 영이 진리를 모르는 심약한 영혼들을 속여 그 잔인한 이빨 사이로 먹잇감을 낚아채어 포식하면서 피학대자들로 하여금 지옥을 살게 하고 있습니다. 그 악한 자가 누구인지, 그에게 끌려다니는 노예부대가 누구인지 추적해 보니 그들은 창세로부터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의 작전에 보기 좋게 참패당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씨앗이 길가에 떨어지거나 돌짝 밭에 떨어지거나 가시덤불에 떨어져 씨앗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유기된 사람들일 뿐입니다. 타오르는 지옥의 고통 가운데서 썩어 없어질 육체의 정욕을 채우고자 잘못된 한 방향으로 가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구역질 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그들의 거짓이 천하에 공개되고 법의 형벌을 받아도 자신은 여전히 고난받는 메시아라고 지껄이고, 모든 것을 빼앗겨도 더 착취해 주시오 기다리는 그 어리석은 자들만 그렇겠습니까. 세월아 네월아 하며 나는 행운아야 이렇게 살아 봤는데 괜찮았어. 저들에 비하면 나는 거룩한 편이야 라고 다독이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부터 그런 인간이기에 날마다 나를 죽여달라는 소원이 기본이기에 이제 잘못된 이성적 기준에서의 빛 좋은 개살구를 과감히 벗어버리자고 말씀드립니다.

3월 9일 중국 푸단 대학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살 된 아이가 대두증과 운동능력 상실로 부모에 의해 병원을 찾았는데, 진료결과 아이의 두개골 안에 종양 대신 '태아'가 혈관을 공유하며 영양분을 공급받아 뼈와 팔, 손까지 발달해 있었다고 합니다. 있어서는 안될 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태아 때문에 아이는 뇌에 척수액이 고이는 수두증(물뇌증)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의료진은 즉시 외과 수술을 통해 태아를 두개골에서 제거했다고 합니다. 수술을 집도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제거된 태아가 세포 분열 과정에서 미처 분리되지 않은 부분이 '숙주 태아'의 전뇌로 발달했던 것이다고 합니다.

버려져야 할 인생이 예수의 피의 복음으로 거듭나 성화의 인간으로 자라갈 때, 분열되어 버려야 할 옛 습성과 사탄의 음성을 잘 들을 세속적 탐욕을 미처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운동력을 상실한 영적 수두증을 앓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 손이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3)]]></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 목사]]></author>
			<pubDate>Sun, 12 Mar 2023 07:54: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6"><![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3.1.9.“예수님을 따라 가는 길 ” (마4:1-11)]]></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37]]></link>
			<description><![CDATA[2023년의 한 주간을 지냈습니다. 시간은 물 흐르듯 지나가고, 새로운 일분일초의 시간 안에서 2023년의 삶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태초 이래, 역사는 변함없이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다 죽고 버려져야 함에도 다함없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그의 아들을 보내사, 고난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 값으로 누구든지 그를 따르면 자유인이 되어 제각각의 마음에 주신 소원대로 오늘의 길을 당당히 걷고 주어진 역사의 한 줄기를 따라 주의 영광의 목적을 이루며 마음껏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의 영광 가운데 계셔야 할 독생자께서, 죄의 권세에 사로잡힌 그의 백성을 찾으시러 어두운 거처로 오셨습니다. 천한 짐승들의 차디찬 먹이통에 어떤 방어력도 없이 벌거벗은 아기로 오셨습니다. 주의 찬란한 영광의 비췸과 하늘 천군천사의 찬양소리로 한 밤 중  들에서 깨어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인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심으로 그 비천함이 하나님의 독생하신 영광의 감추이심이라알려주셨습니다. 웅크리고 있던 그의 백성 우리들에게 소망 중 소망, 감사 위의 감사입니다.

때가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는 요셉 목수의 아들로 자라시다가, 때가 되어 우리를 위한 공생의 사역을 위해 세례 요한에게 겸손히 세례 받으시고, 성령에 이끌리시어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기 위해 광야로 가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말씀이신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모든 사역을 감당하실 터이심에도, 죄인인 우리를 위해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고자 친히 메마른 광야에 가시어 사십 주야를 금식하시며 기도하시고 심히 주리신 상태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사탄, 그는 태초 무흠한 에덴동산에 나타나 하나님의 첫 사람 아담을 실족시켰습니다. 영원한 저주의 형벌인 사망, 불 못에 타면서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고통 받을 지옥의 저주를 인간 세계에 던졌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던 아담이,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짝 지어주신 배필 하와와 더불어 먹지 말았어야 했던 선악과의 탐욕으로 이 저주의 죽음 가운데 내동댕이쳐진 것입니다.

그 유혹자 사탄이 예수그리스도께도 꼭 같이 첫 유혹의 시험을 합니다. 먹음직스럽고(돌을 떡으로 만들라), 보암직스럽고(이 세상 권세가 내 것이니 절하면 네게 주겠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보이게(높은 곳에서 뛰어내림으로 절대 권위를 저급한 것으로 타락시키도록 하는)하여,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께 너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렇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를 쫓으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그를 완패시키셨습니다. 오늘도 사탄은 예수의 제자들을 이렇게 유혹하고 있습니다. 더럽고 추한 것으로 배불리도록 하고, 세상의 권세와 영화의 독소를 영혼에 불어넣으며, 교만의 선두에 서도록 손짓하여 제자들의 정신세계를 완전히 파괴시키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길을 따르지 않으면 세상 것으로 패망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좁고 협착하나 생명으로 이끌리는 길에 이미 들어섰습니다. 무조건 예수님을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남겨주신 십자가의 승리를 심령에 새기고 날마다 찬송하며 말씀으로 무장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나가면 됩니다. 새해 그렇게하면 넉넉히 승리합니다. 할렐루야!]]></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 목사]]></author>
			<pubDate>Thu, 19 Jan 2023 07:57:3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6"><![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3.1.15.“예수님을 따라 가는 길2 ”]]></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35]]></link>
			<description><![CDATA[지난 한 주간 여러분 어떠셨나요. 수고 많으셨지요. 주일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고 살아가려고 다짐하고 예배당을 나가지만, 가정과 일상, 직장 혹 사업장, 그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예상하지 않은 시험거리들이 도처에 복병으로 널려있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첫 사람 아담을 실족하게 하고, 인류에게 사망과 죄를 가지고 온 사탄이,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시험하고 조롱하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교만과 불순종한 대적자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와 지극한 사랑의 희생에 완패하여 어두운 지옥의 구덩이에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벧후2:4, 유1:6). 승리의 예수님 앞에서도 이 사악한 패자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제 3의 시험의 대상으로 택하고 도전합니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은 절대로 불같은 사탄의 시험이 닥쳐오더라도 실패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이기신 예수님의 권세의 이름을 사용할 권한과 부수적 무기와 방어책까지 예수님께서 다 주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이 가득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을 뵈올 영원한 본향 천국의 거처에 곧 데리러 올 때까지 친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지극히 크신 긍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도우시는 성령님을 보내시어 우리에게 능력을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요14, 롬8).

마음을 다잡고 나가는데 왜 이런 시험거리들이 나의 자아를 건드리며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을 무색하게 하는 민망함이 따라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상한 기분과 감정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입니까.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호받는 자입니다(잠24:16). 우리에게 친히 사탄의 시험을 물리쳐 주신 예수님의 본을 보고 따라가면 되는 쉽고 명확한 생명의 길에 서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을 기억하지요. 우리 인생 전반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굳게 붙들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요1). 2023년에는 이 어두운 세상에서 오늘도 여전히 일어나는 세상의 죄악과 고통으로부터 울부짖는 많은 영혼들에게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생명, 기쁨과 행복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올해의 표어가 “어둠에 빛 비추기”입니다. 죄로 어두워진 세상, 온갖 질병으로 정신이 파괴되어 있는 세상, 탐욕으로 급기야 영혼이 죽어 또 다른 지옥의 폐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제자들은  빛과 소금이 되어 곧 오실 재판장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고, 영원한 불 못 지옥의 형벌로부터 고통 하는 자들을 일깨우고 끌어내는 일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한 믿음으로 자신을 세우고 지키고 기도하면 이 거룩한 다짐들이 우리에게 능력이 되어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 목사]]></author>
			<pubDate>Sun, 15 Jan 2023 07:51:4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6"><![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3.1.1.“새해에는”]]></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38]]></link>
			<description><![CDATA[날이 바뀌었습니다. 해가 바뀌었습니다. 2023년이 되었습니다. 보신각의 타종으로, 화려한 축포로, 동해에 떠오르는 해로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2023년을 맞이하였습니다. 23년 전, 전 세계에서 울려 퍼진 새천년 2000년의 환호가 엊그제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에 2023년이 되었습니다. 그 때, 생전에 올 것 같지 않던 2000년이라는 수가 주는 감격과 설레임으로 한동안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다들 새천년 새 다짐을 하며 열심히 살아 오늘 2023년을 또 맞게 된 것입니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더 나은 삶을 향해 치열한 경쟁과 도전으로 세계정세나 경제, 각국의 정치 지도나 사회상, 시대상 등 모든 분야가 변화무쌍하였습니다. 개인적 생활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숨을 돌리며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니, 그간의 지났던 삶의 궤적들이 모두 사라진 듯하나 입 밖으로 내 뱉어진 말들이 사람들의 기억과 공중의 기류 가운데 영원히 떠다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의 걸음걸음이 우리 삶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형태 지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심은 대로 거두는, 콩을 심어 콩이 자라남과, 팥을 파종하여 팥을 거두어들이는 진리의 길을 잘 걸었을 것입니다.

계획하던 대로의 수확물을 그 창고에 쌓아가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총명하던 기억력과 민첩하던 몸놀림이 둔감해지고 더뎌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청청한 나뭇잎이 낙엽으로 산화되듯, 날마다 후패되어가는 우리의 육체의 장막 역시 티끌로 돌아갈 날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니, 더욱 그러합니다.

만약, ‘다시’라는 기회가 없다면,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 받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힌 육체에, 둘째 아담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어둠과 고통 가운데서 지옥의 현재를 살다 영벌의 지옥의 고통으로 생명도 소망도 없을 것입니다.

육체를 입은 인생에 뭘 채워야 할까요, 이 육체의 인생이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새해에는, 새해부터는, 보람된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남겨야 할 것입니다. 새해에는 새해부터는 어둠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것입니다. 새해에는 새해부터는 자신을 더 잘 세우고, 잘 다듬고, 성령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긍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돌보고 살려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불에 타서 죽어야 마땅한 자도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이런 멋진 인생을 살아가십시다. 새해에는. 할렐루야!]]></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 목사]]></author>
			<pubDate>Sun, 01 Jan 2023 07:58:0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6"><![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2.07.31.“작은 여우 축출 작전”]]></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39]]></link>
			<description><![CDATA[“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가2:15)
겨울이 지나고 봄을 재촉하는 비가 그치자 주인은 정원을 더 풍성하게 가꾸고 싶어 길을 나섰습니다. 마침 듬성듬성 흙이 묻은 상태로 뿌리 채 뽑혀 있는 길가 어린 포도나무 묘목들을 발견, 거두어 각종 꽃들과 아카시아 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향기를 발하는 자기의 집 정원 한 곳, 양지 바른 곳에 심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레 돌보았습니다. 이에 보답하여 시들했던 작은 포도나무의 이파리 잎맥은 뚜렷해지고 잎의 색깔도 짙어졌으며 줄기는 점점 굵어지더니 연두의 작은 포도알들이 주렁주렁 송이를 맺었습니다.

주인은 이 포도나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어떻게 돌보아 왔는지,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잘 자라고 있는 그 포도나무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러자 포도나무는 우쭐해져 주인에게 귀한 열매와 포도즙을 바쳐야 할 사명을 잊고, 내리쬐는 태양과 불어오는 바람과 때때로 시원히 내리는 빗방울도 모두 귀찮아졌습니다.

“예전 내 친구 포도나무들은 더 많은 열매를 맺었다고 바람이 내게 말해
주었는데, 나도 더 많은 포도송이를 맺을 수 있는데, 겨우 세 송이란
말이야?”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포도나무들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맞다 맞아, 이게 무슨 꼴이야 비록 버림받았지만, 다시 그곳으로 가보자.
배고픈 여우가 먹이를 찾으러 산에서 내려왔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포도나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얘 맛있고 멋진 포도나무야, 너 마음이 많이 아프구나, 나랑 친구하면 어때,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게, 들어가도 되겠니.”

칭찬과 위로에 포도나무가 마음이 녹아져 대답합니다. 그래 어서 와, 하지만 우리 주인님이 주무시고 계시니 들어와서 조용히 해야 해. 들어와. 씩 미소를 짓고는 여우는 문을 밀고 들어와 포도나무 주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텃밭에서부터, 포도나무가 심겨진 정원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흙을 파헤치며 꽃들을 짓밟고 포도나무 줄기를 긁고 이파리를 잡아당기며 포도송이를 할퀴었습니다. 배고픈 거짓말쟁이 작은 여우로 정원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가서」는 예수님과 교회를 결혼의 관계로 설정하여 쓴 솔로몬의 지혜롭고 아름다운 시인데 , ‘노래 중의 노래 Song of Songs’로, 가장 거룩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2장 15절은 특별히 구원받은 자가 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앙이 탄생하고 영혼에 꽃이 필 때, 마귀의 세속적 가치관에 빠지거나, 쓸모없는 일로 방황하게 되면, 그것이 작은 여우가 되어 내 영혼과 포도원인 교회를 침범하여 망치는 것을 경고합니다. 주님과의 교제를 방해하고 성도의 존재목적을 잊게 만드는 여우가 더 자라기 전, 아직 새끼일 때, 그것을 찾아내고 쫓아내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 내 영혼과 포도원인 교회는 다시 아름답게 가꾸어지게 됩니다. 할렐루야!]]></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 목사]]></author>
			<pubDate>Sun, 31 Jul 2022 07:58:3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6"><![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2.6.19. “차마고도의 그들에게는 누가 가야 합니까?”]]></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34]]></link>
			<description><![CDATA[중국 남부 스촨성과 원난성에서 티베트를 넘어 인도의 벵골과 네팔을 잇는 평균해발 4,000m의 약 5,000km에 이르는, 실크로드보다 200여년이 앞선, 기원전 2세기부터 존재한 고대의 무역로를 ‘차마고도(茶馬古道)’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의 교역을 위해 히말라야 산맥을 지나다니던 상인들이 개척하여 만들어 낸 길을 말합니다. 중국과 티벳은 이 길을 통해 차와 말 뿐 아니라 소금, 약재, 곡식 등의 다양한 물품과 여러 민족의 문화와 종교와 지식의 교류를 이뤘다고 합니다.

말이 무역로이지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놓인 차마고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좁고, 가장 높으며, 가장 가파른 험준한 길로, 그야말로 새와 쥐만이 이 길을 지날 수 있다는 조로서도(鳥路鼠道) 그 자체입니다. 얼마나 험난하고 협착하며 위험한 길인지, 산의 협곡에서 강물이 흘러 길이 끊어진 경우에는 양쪽에 매단 쇠줄에 도르래를 걸어 지나는데 사람이나 말의 등에는 이 도르래에 걸 수 있는 고리를 걸어 이 외줄에 생명을 내맡기고 강을 건너는데, 상인들인 마방뿐 아니라, 말들도 한 마리씩 이 의식을 치러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위험한 낭떠러지 돌길을 묵묵히 오던 말들도 이 지점에서는 움직이지 않으며 도르래에 자신을 맡기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결국 마방에 의해 강제로 묶여 네 다리를 버둥거리며 힝힝 비명을 지르며 미끄러지듯 강을 지나는 말들을 보니, 저걸 우째야 되노?, 우째야 되노?, 얼마나 무서울까, 나도 모르게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지고 몸은 순간 멈춤이 되었습니다.

중국 원난성에서 출발하여 티벳까지 차마고도의 이 위태로운 길을 따라 가는 일군의 또 다른 무리가 있는데, 티벳의 성지 라싸를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추수를 끝낸 목동들이 그들입니다. 그들은 다음 생애에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무엇으로 태어날지 몰라, 한 번 주어진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자 모든 생명을 위해 기도하며 온 몸을 던지는 오체투지의 고행을 떠난다고 하였습니다. 손바닥에 조그만 나무 장갑을 끼고 온 몸을 바닥에 던지며 그들을 기다리는 티벳의 라싸의 불상을 향해 7개월여를 그렇게 추위와 배고픔, 위험을 무릅쓰고 고통을 자청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쌓는 고행으로 인한 선으로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나든, 한 생명으로서 존중받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불순물이라고는 한 점도 묻어있지 않은 듯한 이 진지하고도 순박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표정은 자신들의 영혼을 옭아맨 윤회설의 속박이 얼마나 무겁고 힘든지, 복음 앞에 선 자유민인 우리의 교회를 위한 예수의 남은 십자가의 고난을 육체에 채운다는 바울의 고백과 그리스도인들의 막중한 책임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골1:24).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피 흘려 죽으신 하나님의 독생자의 대속(代贖)으로 인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으며 복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윤회의 운명과 두려움의 속박에 매여 있는 저들에게는 누가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은 안타깝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정입니다. 어쩌면 이 땅의 마지막 심판이 그들로 하여금 유예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저들을 향해서는 누가 가야 합니까.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 목사]]></author>
			<pubDate>Sun, 19 Jun 2022 07:43:1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6"><![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2.06.12.“세계 최고령 소나무 ‘브리슬콘 파인”]]></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40]]></link>
			<description><![CDATA[험난한 환경을 이기고 수 천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세계 최고령을 살아가는 나무가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동쪽 끝에 있는 화이트 마운틴 산맥(White Mountains)에 ‘브리슬콘 파인(Bristlecone Pine)’이라는 군집한 소나무들 중, 4,700살 정도의 수령을 가진 나무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사진을 보니, 수 천 년의 세월 동안 불어 닥친 바람과 눈, 태풍 등에 몸통은 투박해졌으며, 벗겨진 껍질의 자리에는 몇 천 년의 인고의 시간들이 켜켜이 새겨져 있습니다. 벌거벗겨진 가지들은 죽은 것 같으나 온 힘을 다하여 솔방울을 맺으며, 휘말리고 휘말리어 여기저기 갈라져 하늘을 향해 그 손을 뻗어 있는데, 마치 영원을 향한 영혼들의 간절한 소망의 기도 같아 보여, 하늘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가지를 뻗어있는 모습이 가히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늙디 늙은 5,000여 살의 그 노송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빛이 참으로 강합니다. 그곳은 해발 3,000미터가 넘어 비도 거의 오지 않고,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척박한 곳으로, 나무들은 6미터 이상 자라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상꼭대기의 나무가, 비도 오고 땅도 비옥한 더 낮은 고도의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들보다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브리슬콘 소나무가 장수할 수 있는 것은 저지대의 안온한 환경이 아니라, 험난하고 열악한 여건들 속에서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주눅 들지 않으며, 잠식당하지 않는 절개로 하루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십 년을, 백 년을 그리고 천 년을 그렇게 견디어 수 천 년을 지낸 이유입니다. 즉, 끊임없이 불어 닥치는‘위험요소’와‘스트레스’가 오히려 그 나무를 성숙하게 했으며 장수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소나무는 절개와 의지, 충정, 지조를 상징하고 실제로 그 쓰임도 기둥이나 서까래, 대들보 등의 건축 재료로 또 배를 만드는 조선용으로도 쓰이는데, 잎은 각기병, 소화불량 약 또는 강장제로, 꽃은 이질에, 송진은 고약의 원료로, 꽃가루는 차나 다식으로, 이파리는 가을 추석 송편을 찔 때, 솔방울은 기름기가 많아서 불쏘시개나 연료로, 갈라진 껍질은 강력한 흡착능력으로 미세먼지를 제거 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주방 세제에도 소나무 향이 첨가되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없이 굽이굽이 세월을 돌아가고 있는 이 소나무의 가치를 생각하니 가히 놀랍습니다.

소나무를 논하다 보니, 흔히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 사람들의 발에 짓밟힌 들풀이 더 끈질기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다는 잠언에 도달하게 되며, 평범한 삶의 무미건조함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을 감사로 통과하는 사람들만이 경이롭고 찬란하며 달콤한 인생의 열매를 먹게 된다는 평범하지만 고결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인생의 풍랑은 때로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하나, 마치 바이러스와 세균에 감염된 숙주 세포에서 인터페론이 만들어져서 몸에 저항력을 길러 주고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며 항암작용을 하는 것처럼, 위기가 위기를 당한 사람을 살려낸다는 역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역경 가운데서 사방이 캄캄한 흑암이라 할지라도, 이 일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성장하며 영광의 삶을 살도록 하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짐을 믿고 힘을 내세요. 그래요, 무슨 말, 소나무도 하는데요!]]></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 목사]]></author>
			<pubDate>Sun, 12 Jun 2022 07:59: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6"><![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2.5.25.“성경을 통해 지혜를 얻고 지혜를 통해 인생을 얻습니다”(잠언9:10-12)]]></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41]]></link>
			<description><![CDATA[1. 매뉴얼(사용설명서)의 중요성 - 기초

어떤 물건이든 사면 그것을 만든 제조자가 가장 효과적이며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기록해 둔 사용설명서가 동봉돼 있습니다. 그 안내서대로 사용하면 무리 없이 기계나 물건이 작동됩니다. 고장이 나거나 작동이 어려우면 또 고장 상태별로 점검하고 궁금증을 해소 해 주는 설명 뿐 아니라, 자력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때는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센터로 가지고 오세요 하고 전화번호도 나와 있습니다. 정해진 설계도대로 하지 않아서 사건 사고가 난 경우가 수다합니다. 연초에 광주 모 아파트 붕괴나, 예전의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등은 매뉴얼대로 짓거나 고치거나 하지 않고 게다가 부정 등이 연루되어 많은 사상자와 물적 손해를 내고 사회적으로 큰 충격적인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사용설명서 - 성경

피조물 중, 가장 값지고 중요한 인간 역시 사용설명서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의 제조자인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하신 목적대로 기록되어진 성경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목적과 만들어진 기원과 그 육체와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까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가장 안전하고 행복하고 탈 없이 살아가게 되는가를 설명해 두었습니다. 매뉴얼을 떠나 시행착오를 겪은 여러 예시들이 case by case로 가감 없이 쓰여 있어, 아 이 길은 안전한 길이고, 아 그 길은 위험하고 사망으로 가는 길이구나. 그렇구나 인생의 법칙이 여기에 집결되어 있고 모든 정의의 판결이 이곳에 모여 있구나 라고 깨닫게 됩니다. 성경을 잘 알면 실수 없이 인생을 풍성하고도 성공적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입니다.

3. 죄성 대로 사는 것 - 하나님의 대적자 사탄의 계략에 끌려가는 것.

말씀으로 자신의 존재 목적을 상기하지 않고, 그 존재목적을 위한 능력을 제대로 공급받는 성령의 힘을 기도로 구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타고난 죄성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것, 육체의 것에 그들의 눈과 마음이 기울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것이 너무나도 화려하고 달콤하여 잠시잠간이라고 생각한 시간들이 어느덧 어그러진 채로 인생의 틀을 짜버려 이것을 바로잡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죄를 보편타당한 상식의 범주에 넣고 익숙해져 버린 자들의 삶은 흡사 시원한 찬 물이 담긴 비커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삶겨 죽어가는 개구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일어나시오, 지금 당신은 죽음의 길에 들어 서 있소, 그들을 깨울라치면, 나는 삶의 성과가 있어, 너희가 제시하는 그 길이 아니라 이 길을 걸었더니 이렇게 화려한 삶을 살게 되었어 너가 평생을 따라 와봐, 나와 같이 멋진 인생이 되겠어? 라며, 경험으로 얻은 약간의 유익들과 오만을 근거로 항변할 것입니다. 눈이 가려져 사탄이 쳐 놓은 그물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눈을 떠야 합니다.

4. 성공의 지름길,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보내어 주신 보혜사 성령의 능력이 임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모든 말씀이 그저 꿀처럼 달콤할 것입니다(신10:13, 시119:103). 죽은 영혼은 말씀의 꿀로 기사회생하게 됩니다. 얼른 말씀으로 꿀을 먹으십시오. 잠언을 읽고, 현실의 감각을 얻으십시오. 시편을 읽고 삶의 지혜를 얻으십시오. 창세기를 읽고 겸손을 얻으십시오. 사복음서를 읽고 예수 이름 앞에 무릎 꿇으십시오. 말씀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 이생의 성공과 행복은 영혼이 잘됨부터이며, 복된 인생은 저 영원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풍성한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을 따라 겸손히 걷는 자들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지혜이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요14:6). 지금부터이면 됩니다. 가장 빠른 시간입니다. 할렐루야!]]></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 목사]]></author>
			<pubDate>Wed, 25 May 2022 08:01:0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6"><![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제16장 진노의 일곱 대접]]></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30]]></link>
			<description><![CDATA[계시록 16장은 앞 장에서 예고된 일곱 대접 재앙이 땅에 시행되는 것을 보여준다. 16장의 재앙은 애굽에 내린 재앙과 부분적으로 일치하고 있다(출7~10장). 이 장의 내용은 또한 계시록 8, 9장의 것(일곱 나팔 재앙)과 상당한 일치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다. 16장에서는 특히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하며, 진노가 더욱 맹렬해지며, 또한 진노를 당하는 범위에 제한이 없다. 

먼저 요한은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는 것"을 들었다(1상). 이것은 이 음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임을 말해 준다. 그 음성의 내용은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것이다(1하). 따라서 일곱 대접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임을 알 수 있다. 




1. 첫재 대접 재앙(2절)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고 한다(2절). 여기서 '악하고 독한 종기'는 독종, 곧 악한 피부병의 일종(출9:10, 11, 욥2:7)을 말한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첫째 짐승에게 속한 사람들, 곧 그에게 경배한 자들을 말한다(cf.계13:6). 따라서 이 구절은 황제 숭배에 동참한 자,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한다. 



2. 둘째 대접 재앙(3절)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고 한다(3절). 이것은 바다에 대한 심판을 말한다(cf. 출7:17~21). 둘째 나팔 재앙(계8:8,9)에서는 바다 가운데 피조물의 '1/3'이 죽었으나, 여기서는 '모든 생물'이 죽었다. 이로써 심판이 격화되었으며, 이로써 이것이 마지막 심판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3. 셋재 대접 재앙(4~7절)

셋째 대접 재앙은 '강과 물 근원'에 대한 심판이다(4절). 그 때 물을 차지한 천사가 말하였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5절).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 번역에는 "전에도 계셨고"가 먼저 나오지만, 원문에는 "지금도 계시고"가 먼저 나온다(cf. 계1:4,8,11:17). 사람들은 무심코 과거부터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은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신다(cf. 요9:2~3, 빌3:13~14, 삼하12:22~23). 왜냐하면, 현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는 시간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응답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장차 오실 이'가 빠진 이유는 이미 오셨기 때문이다(cf. 계11:17). 따라서 이것은 마지막 종말 심판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구절의 말씀의 핵심은 이렇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이다(cf. 계15:3).

이어서 6절에서는 왜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운지에 대한 '이유'가 나온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기"때문이다. 순교자들의 피에 대해 하나님은 다 보시고 갚으신다(창4:10, 히12:24, 마23:35). 

이에 대해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제단이 화답하였다.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7절).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으로 옳으며, 우리가 긍정해야만 한다(롬3:5~6). 만일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지 않다면, 공의가 무너지고 이 세상은 유지 될 수 없다. 불의가 판을 치고, 마귀가 경배를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심판은 필요하며,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으로 참되시며 의로우시다. 



4. 넷재 대접 재앙(8~9절)

넷째 대접 재앙은 '해(태양)'에 쏟아졌다. 그래서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웠다(8절). 이것은 넓게는 자연계에 내려지는 재앙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였다."고 한다(9절). 회개치 않는 것이 재앙을 만난 사람들의 특징이다. 해마다 태풍이 불고, 수재가 나서 큰 피해를 보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회개하지 않는다. 수재민 돕기와 각종 모금 운동으로 떠들썩 하지만, 정작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말세로 갈수록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 될 것이다. 



5. 다섯째 대접 재앙(10~11절)

다섯째 대접 재앙은 '짐승의 보좌'에 쏟아졌다(10절).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중심'에 심판이 내려진 것을 의미한다(Hendriksen). 그러자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고 한다(10하. 11절). 

세상 나라는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고통당하게 되나, 회개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비방한다. 이처럼 말세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악해지며, 좀처럼 회개하지 않는다(계22:10~11, 단12:10)



6. 여섯째 대접 재앙(12~16절)

여섯째 대접 재앙은 '큰 강 유브라데'에 쏟아졌다(12절). '유브라데 강' 저편은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이 있던 곳이며,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악한 세상을 의미한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다."는 것은 동방 민족들 곧 곡과 마곡(계20:8, 겔38, 39장)이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오는 것을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들이 치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Greijdanus). 곧 세상 세력이 기독교를 공격하러 온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특별히 세상의 마지막 때에 반기독교 세력이 단결하여 일제히 교회를 공격할 것을 가리킨다. 

이어서 요한은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13절)을 보았다고 한다. '개구리 같다'는 것은 혐오감이 드는, 불쾌한, 그리고 염증 나는 성격을 말한다(Hendriksen).  '용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사탄의 직접적인 역사를 의미한다. '짐승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정치적인 역사를 의미한다. '짐승'은 '세상 권세가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 곧 적 그리스도와 그의 지배'(Greijdanus), 또는 '적그리스도적인 정권"(Hendriksen)을 가리킨다.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역사 곧 거짓 종교의 역사를 가리킨다(계13:11이하, 19:20, 20:10). 

이들의 '귀신들의 영들'인데,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은다."(14절). 이것은 마귀의 지배를 받는 악령들이 세상 나라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교회, 곧 성도들을 공격할 것을 말한다. 그 미혹의 수단은 '이적들'이다. 

그리고 나서 잠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언급한다.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개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5절).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였음과 또한 우리가 그 앞에 예비하고 깨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세상의 핍박이 심할수록 예수님의 재림도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고 한다(16절). '아마겟돈'은 원래 히브리어에서 온 것인데 정확하게 음역하면, '하르 마게돈'이다. '하르'는 히브리어로 산을 뜻하고, '마게돈'은 이스라엘의 '므깃도' 지역을 가리킨다. '므깃도'는 바락과 드보라가 가나안 왕 야빈을 무찌른 곳이며(삿5:19), 또한 이곳에서 요시야가 애굽 왕 바로느고에게 죽임을 당했다(왕하 23:29~30, 대하 35:22). 따라서 '아마겟돈'은 전쟁의 장소를 의미한다. 계시록에서 이것은 어떤 구체적인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서 교회와 세상 사이의 싸움,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가리킨다(계20:8~9). 



7. 일곱째 대접 재앙(17~21절)

일곱째 대접 재앙은 마지막 재앙인데, '공기' 가운데 쏟아졌다. 그러자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되었다'고 말하였다(17절). 여기서 '되었다(geogonen)'는 말은 하나님의 세상 역사 운행이 끝났다는 의미이다. 이에 반해 요한복음 19:30의 '다 되었다(tetelestai)'는 것은 객관적인 구속 사역이 완성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성령을 통한 주관적인 적용은 아직 남아 있으며, 세상 역사는 계속된다. 

그러나 계시록 16:17의 '되었다'는 것은 이제 세상 역사가 완전히 끝나고 종말이 왔다는 의미이다. 그 때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었다(18절). 이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하였음을 보준다. 이어서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고 한다(19~20절).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은 단지 로마 제국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요한계시록은 전세계의 전역사를 보여주며, 16장은 세상의 종말에 있을 심판을 보여준다(20절).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15절)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준다. 따라서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악한 세상을 가리킨다. 물론 요한 당시에는 로마 제국이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로마 제국 멸망을 포함아혀 무엇보다도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큰 성 바벨론'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계21:2, 10, 11:2, 22:19)에 대비되는 상징이다. 세상은 '크다'는 것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하다'는 것을 자랑한다. 세상의 죄에 물들지 아니하고 순결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것이 교회의 특징이며 본질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고 한다(21절). 한 달란트는 약 90파운드(45kg) 가량 되는 무게이다. 따라서 이런 무게가 나가는 우박은 실제 우박이 아니라, 상징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만큼 큰 우박이 내릴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만큼 크고 무섭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재앙을 당하여서도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비방한다. 이것이 사람들의 완악함인데 종말이 가까워올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Sun, 30 May 2021 23:42:4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5"><![CDATA[요한게시록읽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제15장 어린양의 노래와 하늘의 성전]]></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29]]></link>
			<description><![CDATA[계시록 15장은 세 개의 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환상(1절)은 일곱 대접 재앙(16장)을 예고한다. 둘째 환상(2~4절)은 마지막 종말의 심판이 행해진 후에 구속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찬송하는 노래이다. 그리고 셋째 환상(5~8절)은 하늘의 성전이 열릴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곧 일곱 천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일곱 대접 재앙을 받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1. 일곱 대접 재앙 예고(1절)

요한이 본 첫째 환상은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진 것을 본 것이다. 이것은 16장에 기록된 일곱 나팔 재앙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곱 나팔 재앙이 14:14~20에 기록된 최후 심판이 행해진 후에 일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14장과 15장의 관계는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환상을 본 순서를 나타낼 따름이다. 

2. 어린양의 노래(2~4절)

2~4절은 14:14~20의 심판이 행해진 후에 구속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찬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모세의 노래', 곧, '어린양의 노래'라고 말한다(3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온 후에 홍해 바닷가에서 그들을 구속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고 노래하였듯이(출15장), 이 세상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구원을 찬송할 것이다. 

먼저 요한이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다(2상). 이 상징은 홍해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통과하였으나, 바로의 군대는 거기서 죽었다(14장). 따라서 '불'은 애굽 군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유리 바다'(cf. 계4:6)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를 상징한다. 

요한이 또 본 것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 있는" 모습이다(2하). 여기서 '짐승'은 13장에 나오는 첫째 짐승을 의미하며, '그의 우상'은 그 짐승의 동상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당시 로마 황제를 가리킨다. '그의 이름의 수'는 13장 끝에 나온 '육백육십육'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첫째 짐승의 수이며, 아마도 당시에 성도들을 핍박하던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은어였을 것이다. 

여기의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이런 핍박과 환난을 이기고 승리한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있었다(2끝). 이들이 부른 노래는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라고 한다(3상).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는 같은 것이다. '모세의 노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닷가에서 부른,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감사 찬송이다. '어린양의 노래'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감사 찬송이다. 이 노래는 곧 이 세상의 환난을 벗어난 성도들이 천국에서 부르는 감사 찬송이다. 

그 노래의 주된 내용은 하나님의 길이 의롭고 참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의롭고 참됨을 찬송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불평하면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불평하고, 자기 자신이 더 의롭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에 대해 의롭고 참되다고 고백하고 찬송해야 한다(cf. 계19:2~3).



3. 하늘의 성전이 열림(5~8절)

이 후에 사도 요한은 또 다른 환상을 보았다. 이것도 앞의 2~4절의 사건이 있고 난 후에 5~8절의 사건이 있다고 보면 안된다. 종말 심판 후에 다시금 일곱 대접 심판이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5절의 '이 일 후에'라는 것은 '앞의 환상을 본 후에'란 뜻이다. 즉 사건의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환상의 순서를 가리킨다. 즉 하나님은 다시금 시간 세계로 돌아와서 이 세상에 임할 재앙들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1절에서 간단하게 보여 주었던 것을 다시금 자세히 보여주신 것이다. 

요한은 먼저 "하늘의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린 것"을 보았다(5절). 여기서 '성전(naos)'는 '성소'를 뜻하는데 특히 '지성소'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이 땅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성소를 말한다(계11:19, cf. 히8:2, 9:24). '장막 성전'은 돌로 된 성전이 아니라, 장막으로 된 성전(성소)를 말한다. 그리고 '증거'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언약궤(증거궤)를 의미한다(계11:19). 성소(지성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십계명이 들어 있는 언약궤이다. 

십계명은 율법을 대표하며, 나아가서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요한에게 하늘의 증거 장막 성소를 보여주신 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따라 이루어질 것을 말해 준다. 

6절에서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 보좌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시행될 것임을 보여준다(계20:11~15).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었다."는 것은 정결하다. 성결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금띠를 띠었다."는 것은 왕적인 위엄을 의미한다. 

그리고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었다."(7절)는 것은, 이제 일곱 대접 재앙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구체적인 심판의 내용은 16장에 나와 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었다."(8상)는 것은,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cf.왕상8:10~11, 대하 5:13~14, 7:1).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이요,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곳이다. 그래서 지극히 거룩하며 지극히 영광스러운 곳이다.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증거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도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Sun, 30 May 2021 22:23: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5"><![CDATA[요한게시록읽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제 14장 십사만사천과 세 천사의 외침과 세상 끝날의 추수]]></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28]]></link>
			<description><![CDATA[요한계시록 14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는 어린양과 십사만사천에 관한 환상이고(1~5절), 둘째는 세 천사의 외침에 관한 것이며(6~12절), 셋째는 세상 끝날의 추수와 심판에 관한 환상이다(14~20절). 
둘째와 셋째 사이에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의 복에 대한 하늘의 음성이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다(13절).


1. 어린양과 십사만사천(1~5절)

요한은 또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있는 것과 그와 함께 십사만사천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1절). 시온산은 메시아의 좌소이다. '십사만사천'은 계시록 7:4에서 살펴본 대로, '모든 그리스도인', 곧 '구속받은 하나님의 교회 전체'를 가리킨다(Van de Kamp). 

왜냐하면, 이들은 3절에서 말하고 있는대로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과 동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4~5절의 내용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표현이며 특별한 집단으로 제한할 수 없다. 이 '십사만사천'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었다(1하). 이것은 이들이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자임을 말해 준다.

요한이 또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고 한다(2절). '많은 물소리'와 '큰 우렛소리'는 위엄 있음을 뜻하며, '거문고'라고 번역된 단어는 원래 '키타라'로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옛날 악기인데, 하프와 비슷하다. 따라서 거문고 타는 것과 같은 소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뜻한다. 

그들이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부른 새 노래'(3상)는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령한 노래를 뜻한다. 그런데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고 한다(3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십사만사천'은 곧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총수를 의미하며, 특정인 그룹으로 제한할 수 없다.

4~5절에는 이들이 어떤 자들인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먼저 이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이다. 이들은 여자 곧 타락한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순결을 지킨 자이다. 그리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이다. 이것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을 뜻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른다(요10:27).

그리고 이들은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다(4하). 이것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택함 받아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의미한다(Hendriksen). 즉 여기의 '첫 열매(aparche)는 앞으로 열릴 많은 열매들 가운데서 '처음 열매라는 의미보다도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의미가 강하다(Van de Kamp, Beale). 

따라서 구약에서의 원래 의미인 '여러 열매들 가운데서 수확하는 처음 열매'라는 의미가 여기서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택함 받아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귀한 열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cf.렘2:3). 또한 이들은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한다(5절). 이것 역시 모든 성도들, 곧 참된 성도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2. 첫째 천사의 외침(6-7절)

6~12절은 세 천사의 외침을 기록하고 있다. 이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면서, 오직 하나님을 경배할 것을 촉구한다. 첫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었다(6절). 세상은 변하지만, 복음은 영원하다(마24:35, 벧전1:23~25). 이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친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다(7상). 그 이유는 "그(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외친다(7하).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을 앞에 두고 있는 우리는 우상 숭배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배해야만 한다. 


3. 둘째 천사의 외침(8절)

이어서 나오는 둘째 천사는 세상에 대한 심판이 행해졌음을 외친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8절).  '큰 성 바벨론'은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상을 의미한다(cf. 요일2:15-17). 바벨론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 민족을 포로로 잡아갔으며, 다윗 왕조의 통치를 종식시켰다(왕하25장). 그래서 바벨론은 세상 권세를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이 세상 권세는 여러 제국들을 통해 나타났으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대적하고 있다(시2편). 요한이 이 계시를 받았을 때, 이 바벨론은 로마였다. 여기 이 구절에서는 적그리스도적인 세상 나라를 의미한다(Greijdanus).

'바벨론(세상)'은 '크다'는 것을 자랑한다. 외적인 위용과 세력을 자랑한다. 이것은 '거룩하다'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거룩한 성(교회)과 대비된다. 또 바벨론은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이다. 여기서 '음행'은 영적인 의미가 주된 것이다. 곧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우상 숭배에는 물론 도덕적 타락이 따라오며, 그 가운데에는 육적 음행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바벨론이 '무너졌다'. 여기에 '무너졌다'는 말이 두 번 반복된 것은 확실함을 강조하며, 아오리스트(aorist)로 표현된 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이미 일어난 것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환상(vision)'이니까 얼마든지 미래 일을 현재에 보여줄 수 있다. '환상'에서는 시간에 구애 받지 않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시간 이동이 자유롭다.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싶은 것을 뜻대로 보여주신다. 



4. 셋째 천사의 외침(9~12절)

이어서 셋째 천사가 강력한 경고를 발한다. 그 핵심 내용은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짐승'은 13장에 나오는 첫째 짐승인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세상 권세, 세상 제국들의 화신이다. 요한 당시에는 로마 제국이었으며, 그 정점에 로마 황제가 있었다. 따라서 그의 우상은 바로 당시 로마 황제의 우상(동상)을 말하며,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는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될 것이며,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갈 것이라고 말한다(10하, 11상). 이것은 그 고통이 끝이 없을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영원토록 '안식'이 없을 것이다(11하).

따라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인내'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12절). 참된 믿음은 어떠한 핍박과 환난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인내를 통해 증명된다. 따라서 예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끝까지 붙드는 인내가 요구된다.



5.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의 복(13절)

요한은 또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다.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13상). '주 안에서 죽는 자'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를 말한다. 그래서 주 안에서, 믿음 안에서 죽는 자를 말한다. 이런 사람이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다(13하). 이것은 안식을 의미한다. 참된 안식은 아무 것도 안하는 거이 아니라, 고생과 수고를 그치고, 주 안에서 참된 생명을 누리는 것, 하나님과의 복된 교제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낙원(천당, 천국)에서 영생을 누린다(계6:9~11, 롬2:7). 성도는 죽으면 그 '영혼(psyche)'이 즉시 낙원으로 간다(눅23:43, 마10:28,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57문의 답). 이들이 복있는 이유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르기 때문"이다(13하). 이것은 그들의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이 있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롬2:6). 이처럼 이 세상에서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들에게는 안식과 영생으로 갚아 주신다. 



6. 세상 끝날의 추수와 심판(14~20절)

이어서 14~20절의 환상은 세상 끝날의 추수와 심판을 보여준다. 먼저 요한은 흰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은 것을 보았는데(14절), 이는 인자, 곧 예수님을 가리킨다. '...과 같은 이'란 표현은 환상 소겡서 본 모습이라서 사용되었다. 

사실 세계의 실체 자체와는 구별된다. '흰 구름' 위에 있다는 것은 영광 중에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한 것인데, 심파하러 오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 머리에 '금 면류관'이 있다는 것은 승리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의미한다. 그 손에 '예리한 낫'을 가졌다는 것은 추수를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부터 나와서(cf. 계15:6, 16:17),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쳤다.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15절). 이것은 이 세상의 역사가 끝나서 마지막 추수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구름 위에 앉은 이가 낫을 휘둘러 곡식을 거두어 들였다. 이것은 영적인 추수, 곧 알곡을 하나님의 곳간에 거두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마3:12. 13:30). 

이어서 17~20절은 땅에 대한 심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예리한 낫을 가진 천사가 등장한다(17절). 그리고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서 예리한 낫을 가진 천사에게 큰 음성으로 말한다.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18절). 여기서 땅의 '포도송이'는 악인 전체를 말하고, '포도'는 악인 개개인을 말한다. 

그래서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졌다(19절). 이것은 심판을 말한다. 세상 끝날의 마지막 심판을 말한다. 20절에 보면,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타디온에 퍼졌더라."고 한다(20절). 여기서 스타디온(stadion)은 로마의 길이 단위인데, 1스타디온은 600헬라 피트이며, 약 180미터가 된다. 따라서 1,600스타디온은 약 300km가 된다. 

이것은 엄청 멀다. 이 세상의 어떤 포도주 틀이라 할지라도 300km가지 튀기는 것은 없다. 따라서 이것은 1,600 스타디온에 대해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을 말해 준다. 1,600은 4*4*10*10으로서, 4는 우주 또는 온 세상의 수이며, 10은 완전수이다. 따라서 이것은 심판이 온 세상으로 널리 퍼진다는 것, 곧 심판의 광범위성(우주성)과 또한 심판의 준엄함과 무서움을 나타낸다.]]></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Sun, 30 May 2021 22:05:0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5"><![CDATA[요한게시록읽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제 13 장 두 짐승과 육백육십육]]></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27]]></link>
			<description><![CDATA[요한계시록 13장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1-10절)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11-18절)에 대해 말한다. 첫째 짐승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세상 나라 또는 그 포악한 제국을 나타낸다. 당시의 세상 나라는 로마 제국이었으며, 그 정점에 로마 황제가 있었다. 둘째 짐승은 이 세상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거짓과 이적으로 세상 사람들을 미혹하며 첫째 짐승 앞에 경배하도록 한다. 이 둘은 사탄의 중요한 두 하수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미혹하여 우상 숭배를 강요한다. 


1.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1-4절)

요한은 '바다에서 한 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이 짐승은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었다. 그리고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었다(1절). 여기서 '바다'는 열국(列國), 곧 세계 각 나라들을 가리킨다(계17:15). '짐승'이 가지는 이미지는 포악하고 잔인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에 대응하는 상징으로서 '어린양'은 온순하고 선량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뿔'은 권세, 힘의 상징이며 파괴의 수단이다. 그래서 '뿔'은 '머리'와 마찬가지로 나라들을 가리킨다(cf. 계17:9-12). '열왕관'은 자기 스스로 취한 권세와 영광을 나타낸다. 

"그 머리들에 참람된(신성모독하는) 이름들이 있었다."는 것은 세상 주관자들이 자기를 신(神)이나 신격(神格)으로 부르는 칭호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주(Kyrios)', 또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 높이 들린 자)'와 같은 칭호들이다. 

요한이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2절). 이것은 구약 시대에 다니엘이 본 네 짐승(사자, 곰, 표범, 무섭고 놀라운 짐승)의 모습과 비슷한다(단7장). 표범, 곰, 사자는 힘세고 용맹하고 사나운 맹수들의 대표들이다(호13:7,8). 이들은 잔인하여 다른 동물을 찢는 성격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 나라의 권세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찢고 죽인다. 그런데 이들 권세의 배후에는 용(사탄)이 있어서 그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짐승에게 준다. 여기서 우리는 사탄과 세상 통치자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와 교제를 볼 수 있다(Greijdanus). 

그런데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랐다."고 한다(3절). 이 구절은 이해하기가 어려우며 주석가들의 견해도 많이 나뉜다. 그 중에서 무난한 견해는 "역사상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전제적 국가 권력은 반복적으로 해를 입으나 그것은 놀랍게도 다시 회복된다."고 보는 것이다(Van de Kamp, Beale). 여기서 우리가 또 생각할 것은 요한계시록에 '짐승'은 '어린양'에 대비되는 상징으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어린양'은 "일찍 죽임 당한 것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계5:6). 그런데 그 '짐승'은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았다. 이것은 '짐승'이 '어린양'을 모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쨌든 온 땅이 이 '짐승'을 놀랍게 여겨서 따른다(3하). 

4절에 보면,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였다."고 한다. 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는 자는 '용', 곧 사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사탄)에게 경배한다. 뿐만 아니라, 짐승에게도 경배한다. 이 짐승은 권세를 가진 '세계 제국'이면서, 또한 그 정점에 있는 '황제'이다. 따라서 이것은 당시의 '황제 숭배'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들이 이 짐승에게 경배할 때 이렇게 말한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4하). 이것은 세계 제국의 중심에 있는 통치자의 막강한 권세를 말한다. 감히 이 통치자와 더불어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모해 보인다. 사탄이 배후에서 권세를 주고 조종하고 있다. 


2. 짐승의 훼방과 권세(5-8절)

그래서 이 짐승은 하나님을 훼방하고 성도들을 핍박한다(5절).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이 짐승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마흔두 달'은 3년 반과 같은 기간으로서 '핍박의 기간'을 나타낸다. '하나님을 훼방한다'는 것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짐승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하늘에 거하는 자들도 욕한다(6절). 이것은 세상 제국의 통치자들이 하나님과 하늘의 존재들을 우습게 여기고 교만하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cf. 단4:30).

뿐만 아니라, 이 짐승은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다."고 한다(7절). 이 짐승은 성도들과 영적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긴다'는 것은 일시적, 가견적 승리를 말한다. 세상 제국의 통치자들은 권세를 가지고 각 나라와 백성들을 다스리며, 또 성도들과 싸워서 이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한다(8절). 이것은 택함 받은 자들 외에는 다 우상 숭배에 동참할 것을 말한다. 


3. 성령의 권고와 격려(9-10절)

이런 환난과 핍박의 상황을 당한 성도들을 향하여 성령께서 권고하시고 격려하신다. "사로잡실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10절). 이 구절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 사본상의 문제와 번역상의 문제가 있다. 개역 한글판에서처럼,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개역개정판에서처럼,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로 보는 것이 좀 더 나아 보인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 때,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만일 어느 누가 사로잡히기로 작정되어 있으면, 그는 사로잡힐 것이요"(Greijdanus, Beale, cf. 렘15:2).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豫定)을 말한다. "만일 어느 누가 황제 숭배를 거부한 죄로 잡혀 죽기로 작정되어 있다면, 아무리 피하고 도망쳐도 잡히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두려워 말고, 당당하게 임하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처럼 예정의 사실은 환난 당한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도 직역해 보면, "만일 어느 누가 칼로 죽임 당하기로 작정되어 있으면, 그는 칼로 죽임 당할 것이다."가 된다. 이 또한 예정의 사실을 말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작정을 벗어나서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공중의 참새 한 마리도 하늘의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10:29). 이것은 바로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을 요구하는 말씀이다(계14:12, 3:10). 어떤 환난과 핍박이 와도, 설령 죽음이 올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말라는 격려의 말씀이다(계2:10).


4. 땅에서 올라온 짐승(11-12절)

요한이 두 번째로 본 짐승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다(11절). 이 짐승은 거짓 선지자를 말한다(계16:13, 19:20, 20:10).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온 세상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 종교와 이방 종교 지도자들 전체를 지칭한다. 여기서 '땅'은 하늘과 대비되며(시115:16), 못한 것, 낮은 것(전5:1, 시103:11, 사55:9)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죄악된 것, 마귀적인 것을 상징한다(빌3:18-20, 약3:14, 15). 이 짐승은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었다."(11하). 이것은 거짓 선지자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을 의미한다(cf. 마7:15, 고후11:14). '용처럼 말했다'는 것은 이 짐승의 본질이 마귀적임을 말한다.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고 한다(12절). 거짓 선지자 곧 이방종교 지도자들은 첫째 짐승의 권세를 다 행하고, 또 사람들을 미혹하여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 이 첫째 짐승은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인데(cf. 3절), 구체적으로는 로마 황제를 가리킨다.


5. 큰 이적을 행함(13-15절)땅에서 올라온 이 짐승은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고 한다(13절). 당시의 이방종교 제사장들은 아무런 화인(印)이 없이도 불이 쏟아져 나오게 하고, 복화술(腹話術, ventriloquism)을 사용하여 황제의 동상이 정말로 말하는 것처럼 했다고 한다(W. M. Ramsay, Hendriksen).  또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고 한다(14절). 이처럼, 당시의 이방종교 지도자들을 용(마귀)에게서 받은 바 이적들을 첫째 짐승 앞에서 행함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였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첫째 짐승(황제)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말하였다.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한다(15절). 여기서 '그 짐승의 우상'은 황제의 동상을 말한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황제의 동상이 말하게 하는 이적(복화술)을 행하였다. 이런 이적을 통해 사람들이 그 우상 앞에 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 

6. 육백육십육(16-18절) 

이 둘째 짐승은 모든 자에게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였다(16절). 이 표는 그 표를 받은 사람이 (첫째) 짐승에게 속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였다."(17상). 이것은 황제 숭배에 참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업과 경제 활동에 막대한 지장과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한다(17하). 이 표는 곧 황에즤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적은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곧 그 표를 가진 자가 첫째 짐승(황제)에게 속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나서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18절). 여기서 짐승, 곧 첫째 짐승은 어떤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수를 '세어보라'는 것은 계산해 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cf. 눅14:28). 그 수는 '육백육십육'이라고 한다. 이 수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며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네로 황제를 가리킨다고 본다. '네로 카이사르(Nero Caesar)'를 히브리어로 변환해서 그 글자의 수 값을 합산하면 666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며, 수신자들도 헬라어를 사용했는데, 왜 히브리어로 바꾸어서 계산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바꾼 히브리어 철자도 정확하지 않다. 철자 하나(요드)가 빠져 있다. 더구나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 할 당시에 네로(54-68년 통치)는 벌써 죽고 없었다. 당시의 로마 황제는 도미티아누스였다. 

그래서 개혁주의 주석가들은 이 '육백육십육'을 대개 상징적으로 이해한다. 즉 6은 7에 하나 모자라는 수이니 불완전함, 인간의 교만을 의미하고, 그것이 세 개 모인 것은 인간의 교만의 극에 달한 수로 보는 것이다(Greijdanus, Hendriksen, Hughes, Beale 등). 그래서 666은 세상의 지배자인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이 적 그리스도는 개인적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집합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도 약간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18절의 '세어 보라(psephisato)'는 것은 '상징적인 해석'을 하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숫자를 '계산해 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6'이 셋이라고 했지만, 원문에 의하면 아라비아 숫자로 '666'이 아니고, '헥사코시오이 헥세콘타 헥스(육백육십육)'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셀라어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이 '6'이 세 개라고 선뜻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짐승의 수'는 곧 '사람의 수'란 것도 어떤 구체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아가서 요한계시록 13장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첫째 짐승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세계 제국인데, 당시에는 로마 제국이었으며, 그 정점에 로마 황제가 있었다. 당시 성도들은 이 황제 숭배 때문에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런 결론은 당시에 로마 제국의 황제이었던 '도미티아누스(Domitianus)'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문맥상, 원어 주석상 가장 자연스런 결론이다. 그렇지만, 과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이름이 합이 666이 되는지가 의문이다. 여태까지 발견된 당시 동전들에 나타나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축약된 헬라어 칭호들(A.KAI. ∆OMET, ∑EB, ΓE)을 다 합치면 666이 된다고 한다(Beale). 그러나 이러한 칭호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동전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따라서 아직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다(Beale). 따라서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Mounce).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기까지는 위 개혁주의자들의 상징적인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Thu, 06 May 2021 13:08:5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5"><![CDATA[요한게시록읽기]]></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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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제 12장 여자와 용의 싸움]]></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26]]></link>
			<description><![CDATA[요한계시록 12장부터 제 2부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1-11장은 교회와 세상 사이의 외적 싸움을 보여주고, 12-22장은 보다 깊은 내적 배경을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다(Hendriksen). 물론 이런 견해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 1-11장에도 내적 배경에 대한 언급이 있다(예를 들면 9-11장). 그러나 12장 이하에서 좀 더 깊은 내적 배경을 보여준다는 것은 대체로 옳다고 할 수 있다. 

12장에서는 해를 입은 여자와 용 사이의 싸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와 용, 곧 사탄 사이에는 끊임없는 싸움이 있다. 그 싸움의 성격과 배경이 무엇인지 본 장은 용과 여자 사이의 싸움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1. 해를 입은 여자와 아이와 용(1-6절)

하늘의 큰 이적이 요한에게 보였다(1절). 따라서 요한이 본 이적은 하늘에 있는 것이었지만, 그런 이적을 통해 보여준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주로 이 세상에서다. 물론 7-10절에서처럼 실제로 하늘에서 있었던 전쟁에 대해 말하고 있는 본문도 있지만, 그 외의 본문이 말하는 바는 대개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말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요한이 본 것은 '해를 입은 한 여자'였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다."고 한다(1절). '해를 입었다'는 것은 영광스러움을 말한다. 따라서 이 여자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가리킨다(엡5:27).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계21:2,9), 또는 '어린 양의 아내(여자)'라고 불린다(계21:9). "발 아래에 달이 있다."는 것은 만물을 지배한다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시8:6 창1:27-29). '열두 별'은 '열두 지파' 또는 '열두 사도'와도 관계되며, 신구약 교회 전체를 가리킨다. '면류관'은 승리 또는 영광스러움을 말한다.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고 한다(2절). 여기서 '아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5절), 곧 그리스도이다. "아이를 배어 아파서 애써 부르짖었다."는 것은 구약 교회의 모든 고난과 고통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고 기다리고 소망하는 것이었다(cf. 눅2:25). 그것은 고통의 기다림이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였는데, 그것은 한 '큰 붉은 용'이었다(3절). 그것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을 쓰고 있었다. '머리'는 큰 나라들을 뜻하고, '뿔'은 작은 나라들을 뜻한다. 따라서 이 용이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탄이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Greijdanus). 사탄(마귀)은 물론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지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불신자들을 통해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눅4:6, 엡2:2, 고후4:4). '왕관(diadema)'은 권세를 상징하는데, 용(사탄)이 가진 권세(일곱 왕관)는 교회의 영광과 권세(열두 별의 면류관)에는 미치지 못한다. 

4절에 보면,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하늘의 별들'은 천사들을 의미하고,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는 것은 천사들을 타락하게 한 것을 가리킨다(벧후2:4, 유6절). 따라서 악령, 귀신은 옛날에 천사가 타락해서 된 것이며, 불신자의 영혼이 죽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불신자의 영혼은 죽어서 바로 지옥에 가며, 이 세상에 떠돌아 다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떠돌아 다니면서 미혹하는 악령들(귀신들)은 옛날에 천사들이 타락해서 된 영적 존재이며, 그 우두머리는 사탄 곧 마귀이다(엡2:2). 그리고 "그 아이를 삼키려 하였다."는 것은 메시아 곧 예수님이 태어나면 그를 죽이려 한 것을 말한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헤롯 대왕을 통해 나타났다(마2장).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한다(5상). 여자가 낳은 '남자 아들'은 메시아, 곧 예수님을 뜻한다. 따라서 여기서 '여자'는 직접적으로는 마리아이지만, 크게 보면 구약 교회 전체이다. 예수님은 구약 교회의 예언과 대망과 고통 가운데 오셨으며, 율법 아래 나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셨다(갈4:4). 이 아들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이다. 이것은 메시아(그리스도)가 권세를 가지고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말한다(시2:9, 계2:27). 여기서 '다스린다'로 번역된 단어는 원래 '양을 친다, 목양한다. 돌본다'는 뜻이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아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시고 먹이시는 목자이다.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5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천 또는 승리를 의미한다. 곧 마귀의 핍박과 공격에서 벗어나서 승리할 것을 가리킨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고 한다(6절). 여자의 도망은 교회의 수난을 의미한다. '광야'는 안식과 평안이 없는 곳, 곤란과 어려움이 있는 곳이며, 시험과 훈련의 장소이다. '1260일'은 3년 반(360*3+180)으로서 환난의 기간을 뜻한다. 교회 시대 전체가 환난의 기간이며, 또한 동시에 하나님이 양육하시는 기간이다. 

이 기간을 '년(年)'이 아니라, '일(日)'로 표시한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날마다 양육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의 '양육하다(trepho)'는 단어는 에베소서 5:29의 '양육하다(ektrepho)'와 사실상 같은 단어이다. 즉 교회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께서 양육하시고 돌보신다. 


2. 하늘의 전쟁(7-12절).

다시 장면이 바뀌어 요한은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을 보았다.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의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웠다."(7절). '미가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호위하는 큰 천사이다(단12:1, 유9절). 여기에 보면, 미가엘은 천사들의 우두머리로서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과 더불어 싸우는 것으로 나온다. 

'용'은 사탄, 곧 마귀를 가리키며, '사자'들은 원래는 천사들, 사절들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마귀의 졸개들(귀신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용과 그의 사자들이 패배하여 땅으로 내쫓겼다. 이 '큰 용'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한다(8절). '옛 뱀'은 옛날에 에덴 동산에 나타났던 뱀을 가리키며(창3장), '마귀(Diabolos)'는 헬라어로 참소하는 자를 뜻한다. '사탄'은 원래 히브리어로서 '대적, 원수'를 뜻한다. 

요한은 또 하늘에 큰 음성이 나는 것을 들었다. 누구의 음성인지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하나님의 음성도 아니고, 낙원의 성도들의 음성도 아니다. 따라서 '천사들'의 음성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10절에서 '우리 형제들'이라고 하는 표현이 걸리지만, 여기서는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과 하늘의 천사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가지는 동일한 관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Greijdanus). 그 음성은 먼저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찬송하는 것이다(10상).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가 역사 속에서 실현되었음을 말한다. 

그 이유가 이어서 설명되어 있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기 때문"이다(10하). 여기에 마귀에 대한 명칭이 두 번 표현되어 있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는 원어로 '우리 형제들의 참소자'이다. '밤낮 참소하던 자'는 관사 있는 현재 분사 구문으로, '밤낮 참소하는 자'이다. 이것은 일상적으로, 늘 참소하는 것을 가리킨다. 마귀는 끊임없이, 쉬지 않고 성도들을 참소한다. 이것이 그의 일이고, 그의 직업이다. 그러나 그런 마귀가 예수님에 의해 쫓겨났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다."고 한다(11상).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이겼다(요일2:13, 14). 자기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겼다(요일5:4, 4:4, 요16:33).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다."(11하). 그들은 죽음이 올 때까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곧 순교하는 한이 있더라도, 믿음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계2:10). 이를 통해 그들은 마귀를 이기고, 영광의 면류관을 받은 것이다. 

이어서 말한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12절). 하늘 나라에서는 믿음의 승리로 인하여 큰 기쁨이 있지만, 땅에서는 환난과 핍박이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은 사탄이 분 내어 땅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탄이 땅에서 크게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벧전5:8). 비유로 말하자면, 머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뱀이 그 몸둥아리와 꼬리를 통해 더욱 격렬하게 발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용의 여자 핍박(13-17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였다."(13절). 이 '남자를 낳은 여자'는 그리스도를 배출한 교회이다. 사탄이 그리스도와의 싸움에서 실패하자, 이제는 그의 교회를 핍박한다. 그런데,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는다."(14절).  이것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의미한다. '큰 독수리의 두 날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교회)를 보호하시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표현이고(출19:4, 신32:11, 12), '광야'는 안식이 없는 이 세상을 말한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세 때 반, 곧 3년 반을 말하는데, 이것은 환난 기간을 의미한다. 곧 교회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환난과 핍박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교회를 양육하시고 안전하게 돌보신다. 

15절은 사탄의 핍박을 묘사한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였다." '여자의 뒤에서'라는 것은 사탄의 야비한 공격을 나타낸다. "물을 강 같이 토한다."고 하는 것은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사탄의 공격은 실패하고 만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기" 때문이다(16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도우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서 '물'이 무엇이냐, '땅이 입을 벌리는 것'이 무엇이냐를 물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이 환상의 상징적인 성격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 환상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탄이 교회를 핍박한다는 사실과, 그렇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위기에서 벗어나며 승리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은 요한에게 보여준 환상 속에서 '뱀'과 '물'과 '땅'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신 것이다. 

실패한 용은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다."(17절).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자들인데, 이들은 교회의 (참) 성도들을 가리킨다. 계시록 12장에서 '여자'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가리키고,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은 교회의 성도들 개개인을 가리킨다.]]></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Wed, 05 May 2021 14:34:5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5"><![CDATA[요한게시록읽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1장 - 2(11:11-19절)]]></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25]]></link>
			<description><![CDATA[5. 두 증인의 부활과 승천(11-12절)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기쁨은 잠간이다. 왜냐하면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기" 때문이다(11절). 여기서 '생기'란 원어로 '생명의 영', 곧 '성령'을 뜻한다. 성령이 그들 속에 들어가니 죽었던 시체가 살아난다.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니 마른 뼈도 살아나고 죽었던 시체가 다시 움직인다(37장). 이처럼 교회는 이 세상에서 많은 어려움과 환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난다. 교회의 대적들이 승리했다고 기뻐하며 자축하는 순간, 하나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은 역전극이 벌어진다. 그러자 기뻐하던 세상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하게 된다(11하). 

그 때에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나서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12절).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얼핏 보기에 이것은 주님의 재림 시에 있을 교회의 '휴거'를 말하는 듯하다(Mounce). 그렇다면 바로 앞 절에서 두 증인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마지막 때 성도들의 '부활'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박윤선, Greijdanus).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이어서 나오는 13절의 말씀과 연결되지 않는다.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여기에 보면, 그 후에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성도들이 부활하고 공중으로 올라간 후에는 세상 역사가 끝이 나고 심판이 있다(살전4:13-17, 마24:29-31, 요5:28-29, 계20:11-15). 성도들이 부활한 후에도 이 세상의 역사가 계속된다는 것은 이상하다. 

따라서 우리는 12절의 '하늘로 올라감'에 대해 문자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승리'를 상징한다. 죽은 시체가 하나님의 영으로 일어난 것이 이미 교회의 승리를 말해 준다. 그렇다면 교회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교회의 승리를 확증하는 공공연한 과시이다. 앞에서 두 증인의 '죽음'에 대해 문자적으로 교회가 죽어서 전부 파멸된 것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분명한 이상, 이어서 나오는 '부활'과 '승천'도 문자적 의미 그대로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13절에서 교회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당해 위기에 처한 교회가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으로 말미암아 이기고 승리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6. 하나님의 심판(13절)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고 한다(13절). 이것은 '교회의 승리'와 동시에 일어나는 '세상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실 때에도, 그와 동시에 애굽의 바로와 그의 군대에게 심판을 내리셨다. 이처럼 택한 자들의 구원은 동시에 세상에 대한 심판을 수반한다. 여기에서도 교회의 승리는 교회를 괴롭히고 박해하던 세상에 대한 심판을 수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 십분의 일'이 무너졌다는 것은 세상의 상당한 부분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성의 '십분의 구'는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칠천'이라는 숫자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칠천'은 7*1,000이므로, 완전수 7에 많다는 개념의 1,000이 곱해진 수이다. 따라서 '칠천'은 상당히 많은 수를 가리킨다. 그러나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다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고 했다(13하). 이것은 지진에 죽지 않ㅇ고 살아남은 자들이 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의미인가? 마지막 종말 때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곤란하다. 이것은 참된 회개가 아니라 피상적인 고백을 말한다(Hendriksen, Hughes, Beale). 그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앞에서, 하나님의 주 되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의미이다(cf. 빌2:11).


7. 셋째 화의 도래 예고(14절)

14절은 막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둘째 화는 여섯째 나팔 재앙(계9:13-21)을 말한다. 이제 한 화가 지나가고 앞으로 또 하나의 화가 올 것을 예고해준다. 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의 재앙을 말하는데, 이것은 다시 일곱 대접의 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다(16장). 이러한 화나 재앙은 반드시 '시간적 순서'를 따라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모습들의 순서'라고 말할 수 있다.


8. 일곱째 나팔과 하나님 찬양(15-18절)

15-18절에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는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나오고 있다. 나팔 재앙이 사실상 끝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휴식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찬송 둘이 나온다. 

첫째는 하늘에서 난 큰 음성이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15절). 이 세상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지만, 역사의 종말에 와서 사실적으로, 참으로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은 자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cf. 고전15:28).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 나라가 완전히 문자 그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죄와 마귀의 세력이 완전히 파멸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원무궁투록 왕노릇 하실 것이다. 

두 번째 찬송은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24 장로들의 찬송이다. 이것은 교회의 감사 찬송이다. 그 내용은 지나온 세상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내용이다.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17절). 여기에 '장차 오실 자'가 빠진 것은 이미 오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에 "옛적에도 계셨고"가 먼저 나오는데, 원문에는 "지금도 계신"이 먼저 나온다. 그래서 원문의 순서에 의하면, "지금도 계시고, 옛적에도 계신"이 된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지금 계신 하나님이 중요하낟. 우리가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은 현재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어, '왕노릇 하시도다(ebasileusas)'는 원어에 의하면, 아오리스트(aorist)로서 '왕노릇 하셨도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바로 앞의 단어 '잡으시고(eilefas)'는 '완료'로서 '잡으셨다'가 된다. 이것은 곧 세상 역사가 끝나고 나서 지나온 세상 역사를 돌아켜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송이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잡으시고 통치하셨기 때문에 모든 악의 세력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18절에 이 사실이 고백되어 있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이방들은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를 대항하여 분노하였다(시2:1-3, 요15:19-25). 이것은 이 세상 역사가 메시아를 대적하는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왔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심판 받을 때가 왔다. 뿐만 아니라, 이 최후 심판 때에는 성도들에게 상급이 있을 것이며, 악한 자들에게는 벌이 있을 것이다(계20:12, 요5:29, 롬2:6-8 등).


9. 하나님의 언약궤(19절)

19절에서는 다시 장면이 바뀌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과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인다. 이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 돌비가 들어있다(출25:16, 40:20). 이 언약궤를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의 말씀대로 약속을 이루시고 심판하시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위엄을 나타낸다(출20:16-19).]]></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Wed, 05 May 2021 13:38: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5"><![CDATA[요한게시록읽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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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제 11 장-1 복음을 증거하는 두 증인(1-10절)]]></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24]]></link>
			<description><![CDATA[요한계시록 11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부분은 1-13절로서 '복음을 증거하는 두 증인'에 대해 말한다. 이 '두 증인'은 어떤 특정한 두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의미한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마귀의 공격을 받아 어려움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개입으로 다시 일어서고 승리한다는 것이다. 15-19절은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의 상황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심판으로 세상의 종말이 오고 난 후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내용이다. 14절은 앞 환상에서 뒤의 환상으로 넘어가는 막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1. 성전 척량(1-2절)

11장 전반부는 10장의 환상의 연속이다. 그러나 내용은 바뀌어서 먼저 '성전 측량'에 관한 장면이 나온다. 10장에서 말하던 그 힘센 천사가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였다.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1절) '척량(尺量)'이란, 자(尺)를 가지고 측량하는 것을 말하는데, 구약에서 이것은 완전한 파괴를 말할 때(왕하 21:13, 사34:11 등), 또는 도덕적 재건을 말할 때(겔40:2 이하, 43:13) 사용되었다. 여기 계시록에서는 범위를 정하는 것, 경계 짓는 것을 뜻하고, 따라서 이것은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Greijdanus). 

그러면 무엇을 척량하라고 하였는가? 그것은 곧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다. 여기서 '성전(naos)'은 마당을 포함한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소'(지성소 포함)를 가리킨다.  이 '성전(성소)'은 문자적인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 곧 성도들을 가리킨다(고전3:16, 고후6:16,17, 엡2:21). 하나님의 성전에는 하나님의 영이 충만히 거하듯이(cf. 왕상 8:10-11, 대하5:13-14), 오늘날에도 참 교회에는 성령이 거하신다. 하나님의 영이 안에 거하는 그들이 곧 성도들이며 성전이다. 

그런데,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한다(2절). '성전 밖마당'은 외양적으로 믿는 형태는 가지고 있으나 참 믿음이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 우리말 번역에는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밖에 내던져 버리고 척량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참 믿음이 없는 자들, 위선적 믿음의 소유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한다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이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다(2중). 하나님은 외양적이고 위선적인 믿음을 가진 자들을 이방인들과 같이 취급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하였다(2하). '거룩한 성'은 물론 지상의 예루살렘 성을 염두에 두고 한 표현이지만, 의미상으로는 '하나님의 교회', 곧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뜻한다(계21:2, 10, 22:19). '마흔 두 달'은 3년 반인데, 이는 7년의 절반으로서 환난의 때를 상징한다. 이처럼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괴롭힌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허락하셨다. 하지만, 그들의 때는 정해져 있다.

2. 두 증인(3-4절)

3-12절은 '두 증인'의 활동과 그 운명에 대해 말한다. 이 '두 증인'은 4절에 보면,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말한다. 스가랴 4장에 보면, '두 감람나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라고 한다(14절). 이들은 그 당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로 보는 것보다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돌보시고 인도하시기 위해 세우신 도구들과 기관들"로 보는 것(Greijdanus)이 더 옳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감람나무'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감람나무는 감람유라는 기름을 생산하는 나무이다. 따라서 이 감람나무를 통해 기름이 등대에 공급된다. 그러므로 감람나무는 등대를 밝혀 주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다면 감람나무는,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신 말씀(슥4:6)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는 통로 또는 기관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두 감람나무'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는 기관,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뜻한다. '두 촛대(등대)'도 마찬가지로 세상을 밝히는 교회의 기능을 상징한다(마5:14-16). 그리고 여기서 '둘'이란 수는,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증거의 효력과 관련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약에서 두 세 증인의 증거라야 효력있게 받아들여졌다(신19:15). 예수님께서 70명의 전도자들을 내보내실 때에도 둘씩 보내셨다(눅10:1).

이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한다(3절). '일천이백육십 일'은 연으로 환산하면, '3년 반'이요, 달 수로는 '마흔두 달'이다. 그러면 여기서는 왜 '마흔두 달'이라고 하지 않고, '일천이백육십 일'이라고 하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복음 증거와 관계 있을 것이다. 복음 증거는 날마다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복음 증거에는 환난과 핍박이 따른다. 그래서 '3년 반'에 해당하는 '일천이백육십 일'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일천이백육십 일'은 그리스도의 초림(또는 승천, 또는 성령강림)으로부터 재림에 이르는 전(全) 복음 시대를 가리키며, 종말 전의 어떤 특정한 기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통속적으로 많이 유포되고 있는 '7년 대환난'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숫자의 상징적 의미를 간과한 데서 온 것이다. 


3. 두 증인의 권세(5-6절)

5-6절에서는 두 증인의 권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려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5절). 여기서 "입에서 불이 나와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린다."는 것은 꼭 문자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기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교회를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뜻이다(요일5:18). 누구든지 교회를 해하려 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또 "그들이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고 한다(6절). 이것은 교회가 권세를 가지고 역사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 엘리야가 기도하였을 때 하늘 문이 닫혀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것 처럼(왕상 18:1-7, 약5:17), 교회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마16:19, 요20:23). 교회는 복음 전파를 통해 죄 사함과 구원의 권세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권징을 실시할 수 있다. 나아가서 교회는 일반적으로 기도의 권세를 가지고 역사한다(요14:13-14, 약5:12-18).


4. 두 증인의 죽음(7-10절)

그러나 악한 자가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는다. 악한 마귀는 복음 증거자들을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그들이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터인즉"(7절). 여기서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라고 한 것은 교회가 복음을 다 증거할 때까지 사탄이 가만히 있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면 무슨 뜻일까? 어떤 사람은 복음 증거자가 그 때까지도 계속해서 핍박과 환난 가운데 살지만, 아직 죽임 당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 후에 그들은 정말로 완전히 죽임 당하며 멸망당한다는 식으로 해석한다(Greijdanus).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교회에 대한 사탄의 핍박은 항상 있어 왔으며, 복음 전파자와 동시에 강력하게 역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7절의 말씀을 역사상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장면들'의 순서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낟. 즉 하나님은 요한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나서 교회에 대항하는 악의 세력의 저항을 보여주신다. 요한계시록은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1:19). 우리는 이 '환상'의 성격을 잘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사탄의 공격은 비록 두 번째 장면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복음이 전파될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은 '적 그리스도'라고 보기도 하고(Greijdanus), 또는 '적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보기도 한다(박윤선). 우리는 이것을 마귀 자신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는 마귀의 수하에 있는 어떤 실체나 세력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짐승'은 요한이 본 '환상' 중에 나오는 상징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어떻게 보든 튼 상관은 없다. 어쨌든 그 배후에는 사탄(마귀)이 조종하고 있으며 능력을 주고 있다. '무저갱에서 올라온다'는 표현은 이 짐승이 '악의 나라'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어두움의 나라'에 의해 지배받고 조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Greijdanus).  

이 짐승이 두 증인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이라고 한다(7절). 그래서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다."고 한다(8절). 이것은 교회의 패배처럼 보인다. 복음의 완전한 실패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부분은 해석상의 어려움을 안겨다 준다. 어떤 학자는 이것은 직분자들과 수종자들을 가진 조직된 기구로서의 교회가 파괸된다는 뜻이라고 한다(Greijdanus). 성도들은 남아 있지만, 조직된 전체로서의 교회는 파괴되고 잔해만 남게 된다는 뜻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지역에 따라 조직된 교회가(거의) 완전히 파괴된 곳도 있지만 (예를 들어 옛날 중공과 북한 지하의 교회), 지구상의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 종말 직전에는 조직된 교회가 이 지구상에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부분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보여주신 '환상'의 의도를 따라 해석해야만 옳다고 본다. 곧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사탄의 공격을 받아 심히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이르며, 심지어 그 생명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는 것이다. 

8절에 보면, 죽임 당한 두 증인의 '시체(ptoma)'는 단수로 나온다. 이것은 집합 명사로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 전체 곧 교회를 가리킨다.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 구경할 수 있도록 세상 가운데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교회는 연약하여서 마치 죽어서 시체가 된 것 처럼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한다. 

그 성(城)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한다(8절). '소돔'은 경건하지 아니하고 도덕적으로 심히 타락한 죄악의 도시의 상징이다.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을 종노릇하게 하고 괴롭힌 나라 곧 이스라엘의 대적이며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의 상징이다. 그리고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은 모든 죄악의 세력이 총집결하여 생명의 주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악의 장소를 말한다. 모든 죄악의 세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고 한다(9절). 이것은 세상의 죄악이 얼마나 크고 패역한가를 보여준다. '사흘 반'을 7일의 절반으로서의 환난의 기간, 세상의 악이 일시적으로 승리하는 기간을 뜻한다. '장사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심한 모욕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 증인들의 죽음을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낼 것이다."(10절). '예물을 보낸다'는 것은 기쁨의 표현이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는 것을 기뻐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자 군병들이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며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던 것과 마찬가지이다(마27:35-44).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복음을 전한 것을 말한다. 복음은 세상의 죄를 책망한다(겔2:7, 딤후4:2, 요16:8-9). 복음 증거 자체가 세상 사람들의 죄를 전제하고 있으며,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Thu, 29 Apr 2021 23:32: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5"><![CDATA[요한게시록읽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제 10 장. 작은 책을 가진 천사]]></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23]]></link>
			<description><![CDATA[요한계시록 10장에는 힘센 다른 천사가 내려 와서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책을 요한에게 주는 장면이 나온다. 요한이 이 책을 받아 먹으니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배에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은 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들을 때에는 꿀 같이 달지만 전할 때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말해 준다. 


1. 힘센 다른 천사(1-4절)

먼저 사도 요한은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았다."고 한다(1절). 또 이 천사는 "그 손에 작은 책을 들고 있었으며,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있었다(2절). 그러면 이 천사는 누구일까? 계시록 5:2의 천사와 동일한 천사로 볼 수도 있고(Mounce, Van de Kamp), 그냥 매우 높은 천사로 볼 수도 있다(Greijdanus). 그런데 이 천사는 무지개를 두르고 있으며 바다와 땅을 밟고 있는 매우 특별한 존재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를 신적 그리스도 자신이거나 신적인 여호와의 사자로 보기도 한다(Beale). 그러나 우리는 이 천사를 '그리스도로 대변하는 천사'로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 그리스도의 모습과 일치한다(cf.계1:7,16, 4:3). 그러나 본문에 여러 차례 '천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천사라고 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 영화'에서 예수의 역할을 하는 배우는 예수 자신은 아니지만, 예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에서 천사는 계시의 전달자로서 여러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1절에서 이 천사는 "구름을 입고" 또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다."는 것은 신적 영광을 나타낸다. 천사 자신은 신적 존재가 아니지만, 그가 대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위엄과 신적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얼굴은 해 같다."는 것도 그리스도의 찬란함과 영광스러움을 나타낸다(계1:16, 마17:2). "그 발은 불기둥 같다."는 거은 그리스도의 위대함과 찬란함을 말한다(cf. 계1:15).

이 천사는 펼쳐진 '작은 책(biblaridion)'을 그 손에 가지고 있었다. '비블라리디온'은 작은 책을 말하며, 개역개정판의 '작은 두루마리'는 의역이다.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았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지배한다. 다스린다는 뜻이다. 천사가 온 세상을 다스린다고 볼 수 없다. 천사는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는 영에 불과하다(히1:14). 

그리고 이 천사가 "사자의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발했다."고 한다(3절). 이 부분을 정확히 번역하면 "... 일곱 우레가 각각 제 소리를 발했다."가 된다(cf. 시29편). 이것은 그 소리의 우렁참과 다양함을 의미한다. 이 일곱 소리를 요한이 기록하려고 하였으나,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하였다(4절). 따라서 이 소리들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미래의 일 또는 하나님의 작정과 관련된 말씀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미래를 결정하는 모든 현상의 요인과 작인은 우리가 알 수도 없고 묘사할 수도 없다."(Hendriksen)


2. 그 천사의 맹세(5-7절)

이 부분에서는 이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 내용이 나온다. 
그 맹세의 내용은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6하, 7절). 여기서 "지체하지 아니하리니"의 원문을 직역하면, "시간이 더 이상 없으리니"가 된다. 곧 연기나 지체가 더 이상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세상의 종말이 지체 없이 오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곧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운행하시는 마지막 일들이 지체 없이 이루어 질 것이며, 이에 따라 여러 무서운 일들과 두려운 사건들이 일어날 것임을 말하고 있다(Greijdanus). 

'하나님의 비밀'에 대해 우리는 그저 신비한 일이나 불가사의한 일들을 가리킨다고 보면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모든 작정'을 뜻한다(계1:20, 17:5,7).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운영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다(전3:11, 7:14, 신29:29). 물론 이제 그리스도 안에 그 핵심이 나타났다(롬16:25-26). 그러나 이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일들과 사건들의 비밀은 역사의 종말에 가서야 온전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온전히 이루게 될 것이다(암3:7).


3. 입에는 다나 배에는 쓴 책(8-11절)

그 천사는 또 요한에게 그의 손에 펴 놓인 책을 주면서 "갖다 먹어버리라."고 말한다(8-9절). 이 말대로 요한이 그 책을 먹어버리자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고 한다(10절).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복음은 꿀 같이 달다. 하나님의 말씀은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했다(시19:10, 119:103). 그러나 복음에는 쓴 고난이 따른다. "복음은 영광스럽고 달다. 그러나 그것을 전파하는 데에는 항상 쓰디쓴 고난이 따른다."(Hendriksen). 

실제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으로 추방되었다(계1:9).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 중 몇은 옥에 던지워 시험을 받았다(계2:10). 이처럼 복음 전파에는 핍박과 환난이 따른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다(딤후1:8). 

그렇다고 우리가 고난을 인하여 슬퍼하거나 좌절하면 안 된다. 복음 전하는 자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이치요 기뻐하시는 바이다. 오히려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이다(마5:11, 12). 따라서 우리는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11절)는 말씀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여기서 '예언하다(propheteuo)'는 것은 복음을 전한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배척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들 중에서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올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Thu, 29 Apr 2021 22:59: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5"><![CDATA[요한게시록읽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제 9 장-2(7-21절)]]></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22]]></link>
			<description><![CDATA[3. 황충들의 모양(7-10절)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다."고 한다(7절). 여기서 '말들 같다'는 것은 마귀의 역사의 빠르고 전투적인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개역개정판에 '관'이라고 번역된 '스테파노스(stephanos)'는 면류관을 뜻한다. "금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다."는 것은 마귀의 세력이 일시 승리하여 휘날리는 기세를 의미한다. '금 면류관 비슷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모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 얼굴이 '사람의 얼굴' 같다는 것은, 이 '황충'이 문자적 메뚜기가 아니라, 상징임을 보여주며, '이성'과 '지각'이 있는 존재임을 말한다.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다."(8상)는 것은 아름답게 유혹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마귀가 이 세상의 종교, 사상, 철학, 이단, 세상 쾌락, 게임, 스포츠 등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것들은 우선은 아름다워 보여도 따라가다가는 멸망한다. 그리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다."고 한다(8하). 이것은 모든 것을 찢고 파괴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다고 한다(9상). 이것은 공격받지 아니함, 단단함을 의미한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그들(마귀의 세력)을 해할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다(Greijdanus). 또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다."고 한다(9하). 이것은 많은 무리의 무서운 공격력을 의미한다.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고 한다(10절). '전갈'은 사람을 해하는 무섭고 독한 것을 의미한다. '꼬리'는 거짓 선지자를 의미한다(사9:15)고 볼 수도 있고(박윤선), 그냥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다섯 달 동안'은 정해진 기간인데, '열 달'의 반으로서 마귀(또는 귀신들)가 역사하는 기간, 곧 거짓 선지자들과 악의 세력들이 역사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4. 무저갱의 사자(11절)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고 한다(11절). 귀신들(악령들)의 우두머리(왕)는 '무저갱의 사자'라고 불린다. '사자'란 원래 '보냄 받은 자, 파송된 자' 또는 '천사'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무저갱이 파송한 자, 사신이란 의미이다. '무저갱'은 문자적으로는 밑바닥이 없는 곳을 의미하는데, 지옥, 음부를 의미한다. 그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아바돈(Abaddon)'이라고 한다. 이것은 '멸망(destruction)'을 의미한다. 헬라어로는 '아볼루온(Apolluon)'이라고 한다. 이것은 '멸망케 하는 자(destroyer)'란 뜻이다. 이 두 이름은 곧 사탄, 마귀의 속성을 대변한다. 마귀는 멸망케 하는 자이다. 


5.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13-16절)

12절은 앞으로 이를 두 재앙을 예고해 준다. 그리고 13-21절은 '전쟁'의 재앙을 보여준다. 문자적인 전쟁이 아니라, 마귀의 역사에 의한 영적 전쟁을 말한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나님 앞의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났다(13절). 여기의 '금단(금 제단)'은 지성소 앞 성소에 있는 향단을 의미한다(출30:1-3, 계8:3). 향단에서 재앙을 알리는 음성이 들린 것은, 성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이 세상에 재앙이 임한다는 것을 말한다(계8:3-5). 금단 네 뿔에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고 하였다(14절). '큰 강 유브라데'(계16:12)는 앗수르 제국, 바벨론 제국이 위치했던 곳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멸망시켰다. 따라서 '유브라데'는 하나님의 대적하는 세상 권세, 지옥 권세를 상징한다(Greijdanus).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된 자들"이라고 한다(15절). '그 년, 월, 일, 시"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의 진행을 세세한 부분까지 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시작과 경과와 끝나는 시간까지 하나님이 다 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시작과 경과와 끝나는 시간까지 하나님이 다 정하셨다. 그리고 그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라고 한다(16절). 

'이만 만'은 2억인데, 이 세상에 2억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는가? 따라서 '이만 만'은 상징적인 숫자로서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의미한다. 이것을 문자적 의미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또한 마병으로만 구성된 군대는 이상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설령 2억의 마병대가 있다 한들, 현대전에서 그것이 무슨 큰 위협이 되겠는가? 전투기와 탱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억' 앞에 붙은 '2'라는 숫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것은 아마도 싸움의 수, 전쟁의 수라고 생각된다.



6. 마병대의 모습(17-19절)

요한이 환상 가운데 이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을 가지고 있었다(17상). 이 색깔들은 다 멸망, 죽음, 파괴를 상징한다(Greijdanus). 또 그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고 했다(17하). 이것을 볼 때 우리는 이 말이 문자적 의미의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불'과 '연기'와 '유황'은 각각 구체적인 의미를 가진다기보다 전체로서 전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세 재앙(불, 연기,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 당했다는 것도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죽임 당했다는 의미이다.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고 하였다(19절). 여기서 '입'은 말(言)을 의미하고, '꼬리'는 거짓 선지자를 의미한다(사9:15). 이처럼 마귀는 언어와 이론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하며, 또한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들, 세상 쾌락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하고 멸망케 한다. 따라서 이것은 전체적으로 마귀의 역사를 말한다. 

"그 꼬리는 뱀 같다."는 것은 이 말(馬)의 마귀적 기원을 말한다(Mounce). 그리고,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한다."고 했는데, '머리'는 지성, 사상, 학문을 의미한다. 마귀는 거짓 학문과 사상으로 수많은 사람을 파멸에 빠뜨린다. 예를 들어 독일의 나치 치하에서 우생학과 진화론, 인종차별주의를 통해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하였으며, 전쟁을 통해 수천만 명을 죽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마귀는 진화론과 프로이트 심리학, 공산주의 사상, 거짓 철학과 자유주의 신학, 종교다원주의와 뉴 에이지 사상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다. 



7. 회개치 아니함(20,21절)

그러나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고 한다(20, 21절). 세상 사람들은 재앙을 당해도 회개치 아니한다.

지진과 해일과 기근과 산 사태 등,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이단과 거짓 사상에 빠져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탄식과 절규는 하지만, 좀처럼 회개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귀신들을 섬기고 우상들에게 절한다. 여기서 '복술(卜術)'이란, 원어로 '파르마콘(pharmakon)'인데 마술을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처럼 재앙을 당하여도 자기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아간다. 그래서 또 다른 재앙이 불가피하며, 이 세상은 결국 마지막 대심판으로 나아가게 된다.]]></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Sat, 17 Apr 2021 20:18:4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5"><![CDATA[요한게시록읽기]]></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제 9  장-1(1-6절)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 재앙]]></title>
			<link><![CDATA[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content_redirect=321]]></link>
			<description><![CDATA[요한계시록 9장은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 재앙을 말하고 있다. 다섯째 나팔 재앙(1-11절)은 '황충의 재앙'을 말하고 있으며, 여섯째 나팔 재앙(13-20절)은 '마병대의 재앙'을 말하고 있다. 12절은 중간 연결 역할을 하고 있다. 황충의 재앙은 지옥과 마귀의 역사를 나타낸다(Greijdanus). 그리고 마병대의 재앙은 전쟁의 재앙을 나타내는데, 교회와 이 세상 사이에 영적 전쟁이 있음을 나타낸다.


1. 땅에 떨어진 별 하나(1,2절)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요한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무저갱의 열쇠가 주어졌다(1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는 사탄 곧 마귀를 뜻한다(눅10:18). '무저갱(abyssos)'은 마귀와 귀신(악령)들이 머무는 장소이다(눅8:31, 계20:1,3). 무저갱의 열쇠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마귀와 악령들의 역사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 준다(cf. 계6:4, 8:2). 그 천사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 왔다. 그리고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어두어졌다(2절). 이것은 이 세상 신의 어둡게 하는 역사를 말한다(고후4:4). 마귀는 악한 사상과 세상 쾌락과 죄악을 통해 사람의 심령을 어둡게 하는 역사를 한다. 


2. 황충의 재앙(3-6절)

다음에 요한은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가 주어졌다."(3절). 여기의 '황충(蝗蟲)'은 쉽게 '메뚜기'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메뚜기들의 역사는 사람의 마음과 사회 생활에 있어서 어둡게 하고 괴롭게 하는 역사를 묘사한다(Greijdanus).  왜냐하면 메뚜기는 사람과 짐승을 위한 음식을 다 먹어치우기 때문이다(출10:4-15, 욜1:4-12). 계시록의 메뚜기들은 사람의 모든 삶의 기븜, 이해력, 즐거움과 용기를 빼앗아 간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의 이성과 감정에 역사하는 마귀의 역사를 가리킨다(Greijdanus). 이 메뚜기들이 받은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는 사람을 아주 괴롭게 하는 역사를 말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고 하는 명령이 주어졌다(4절). 이 말씀을 한 주체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으나 하나님이거나 또는 더욱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천사일 것이다. 어느 쪽으로 보든 큰 차이는 없다. 이 말씀을 진노 중에도 긍휼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아직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았다. 

이러한 마귀의 역사는 전(全)역사 시대에 걸쳐 일어나며 예수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귀의 역사는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 곧 성도들을 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지키시고(유24절), 예수님이 지키시고(요17:12), 성령이 기도하시기 때문에(롬8:26), 악한 자가 저(성도)를 만지지도 못한다(요일5:18).

그러나 황충들은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고 다만 다섯 달 동안 괴롭게 하는 권세"를 받았다(5절). '다섯 달'은 '열 달'의 반이다. 따라서 이것은 완전수(열달)의 절반이므로, 환난이 기간, 고난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 기간은 그렇게 짧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긴 것도 아니다. 그 기간은 정해져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이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오래 참으신다(롬2:4).

그러나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다."고 한다(5하). 이것은 그 고통이 심하고 아픈 것을 말한다(cf. 왕상 12:11, 14). 그래서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고 하였다(6절). 이것은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아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심한가 하는 것을 나타내 준다. 이처럼 이 세상 사람들은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아 큰 고통을 당한다.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살다 보니 마음에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롬2:16-17).]]></description>
			<author><![CDATA[변정미]]></author>
			<pubDate>Sat, 17 Apr 2021 19:31:1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xn--939ajxm7ebv6ap5qita.org/?kboard_redirect=15"><![CDATA[요한게시록읽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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